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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 중 2명의 대통령이 암살당했었다.

링컨과 케네디

그 중 케네디는 그리 멀지 않은 역사 속 인물이고, 그의 죽음과 관련하여 석연찮은 의혹들이 많았다고 들었기에 관련 내용을 담은 영화 JFK는 개봉 전부터 꼭 보고 싶은 영화였다.

영화 속에는 대중들에게 공개되지 않은 선명한 화질의 저격 당시 영상이 영화 속 마지막 재판 과정에서 공개되는데 검사의 설명과 함께 그 장면이 곁들여지는데 그 부분이 클라이막스가 아닐까 싶다.

 

미국 대통령이 공개적인 장소에서 저격에 의해 암살당하고,

범인은 단독범으로 오스왈드 라는 사람이 지목되는데, 극장에서 영화보고 있다가 체포되고,

경찰들에 의해 이동 중인 용의자 오스왈드는 잭 루비(나이트 클럽 운영자) 라는 사내에게 또 총을 맞아 죽는다.

그런데 그 잭 루비 역시 감옥에서 의문사 한다.

그 후 10개월 후 대통령 암살 사건을 조사한 워런 위원회는 오스왈드의 단독범행으로 결론지으며 보고서를 내는데 그 보고서가 바로 워런보고서다.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고, 상당수 미국인들이 신뢰하지 못한다고 한다.

 

 

누가봐도 저 일련의 과정은 미심쩍은 부분이 많다.

 

세상에 어떤 사건이 발생하고, 그 사건이 복잡하고 진실을 밝히기 어려울 때는 간단한 이치로 돌아가야 한다고 본다.

 

1. 그 사건으로 인해 누가 가장 이득을 보게 되었는가.

2. 더불어 그 전까지 손해를 보았던 쪽, 불만이 많았던 쪽은 누구였던가.

 

JFK 영화를 다 보고나면, 대통령 암살의 진범이 누구일지 궁금해진다.

그러려면 당시 케네디 전후를 둘러싼 배경지식이 필요한데, 그에 도움을 줄만한 영화가 Thirteen Days (D-13)이라는 영화다.

 

 

<미국 대통령>

34대  아이젠하워

35대  케네디

36대  존슨

37대  닉슨

 

영화 Thirteen Days (D-13) 는,

미국와 쿠바 그리고 소련(지금의 러시아)와의 긴장감 넘치는 외교 이야기를 담고 있는 상당히 흥미로운 영화다.

어쩌면 세계3차대전이 일어났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외교적 역량이 빛나지 않았나 싶지만,

JFK영화를 보면 당시 미국 내에서 케네디의 그러한 행보에 대해 매우 못마땅해하는 보수세력이 존재했었던것 같다.

 

관련 내용을 검색해서 찾아보니 이런 글이 보였다.

케네디 행정부의 첫번째 외교정책은 대실패였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임기말년에 미국 CIA는 쿠바 침공을 위해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쿠바 망명자들을 조직하여 무장시키고 훈련시켰다. 미국합동참모부는 신임 대통령인 케네디에게 이 병력이 일단 쿠바 해안에 상륙하면 쿠바의 지도자인 피델 카스트로에 대한 총궐기를 촉발시킬 것이라고 일치된 견해를 제시했다. 그러나 피그스 만 침공은 대실패로 끝났다. 쿠바 해안에 상륙한 특공대는 사살되거나 사로잡혔다. 케네디는 이 실패에 대하여 '단독책임'을 졌다. 그는 사석에서 아버지에게 합동참모부의 추천사항을 사전 검토 없이 그대로 수락하는 일은 다시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소련의 총리인 흐루시초프는 1961년 6월 빈에서 케네디와 만나고 나서 이 젊은 대통령의 그릇을 정확히 파악했다고 생각했다. 흐루시초프는 동·서 베를린 사이에 장벽을 건축하라고 지시하고 동독과 단독으로 평화협정을 체결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케네디 대통령은 방위군과 예비군에게 동원령을 내렸고 흐루시초프는 단독평화협정 위협을 취소했다.

 

(여기서부터가 영화 D-13의 스토리와 관련)

1962년 10월 소련제 중단거리 핵 미사일이 쿠바에 배치되고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케네디는 그 미사일들을 철거하라고 요구했다. 그는 쿠바를 고립시키라고 명령했고 실제로 소련군함이 쿠바에 도착하지 못하도록 해상봉쇄 조치를 취했다. 13일 동안 핵전쟁이 임박한 듯한 분위기였다. 그 뒤 소련의 총리인 흐루시초프가 공격용 무기는 철수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10개월 뒤 케네디는 흐루시초프와 영국 총리 해럴드 맥밀런이 참가한 가운데 핵실험금지조약에 서명했는데 이것은 커다란 외교적 개가였다. 1960년 대통령선거에서 가까스로 이겼기 때문에 케네디는 의회접근에 조심성을 보였는데 또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의회는 대체로 케네디가 제안한 법안들에 대해 별 흥미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회는 중남미 국가와의 '진보동맹'(Alianza)과 수천 명의 대학생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은 '평화봉사단'(Peace Corps)을 승인했으나 그가 크게 관심을 기울였던 2개의 법안, 즉 대규모 소득세 삭감과 포괄적인 민권보호조치에는 냉담했다. 결국 이 안건은 그의 사후에 통과되었다.

 

 

쿠바 사태

베트남 전쟁

소련과의 냉전

이러한 와중에서 그는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였는데, 미국 같은 큰 나라의 대통령이 백주대낮에 저격당해 죽었는데 그 배후가 명쾌하게 밝혀지지도 않은체 지금껏 시간이 흘러왔다는 부분에 있어 이 두 편의 영화는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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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lk R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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