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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1편이 나오고 무려 36년만에 후속편이 만들어진 예가 얼마나 될까.
그것도 1편의 주인공이 다시 다오면서 1편의 스토리를 이어간다.

 

 

 

86년 영화속 그 풋풋했던 젊은 청년은 이제 은퇴를 앞두고 있지만,
여전히 본능적이고, 폭발적이며, 거칠다.
하지만 안으로는 지난날의 상처들을 간직하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그렇게 쌓여가는 시간의 흔적들이 있다.
그것은 좋은 추억이 되는 것도 있지만, 
어떤 것들은 죄책감, 족쇄가 되는 것도 있다.

이 영화는 그런 보편적인 부분들을 아주 잘 녹여내고 있다.
그걸 화려한 볼거리와 함께 말이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통해 4D상영관을 처음으로 경험해 봤다.
처음에는 덜컹거리는 좌석이 거슬리고 불편했지만,
영화를 다 본 이후,
왜 다들 이 영화는 그런 상영관을 통해서 보라고 했는지 확실히 알것 같다.

이 글을 쓰며 떠올려 본다.
내 안에 죄책감, 족쇄로 남아 있는 지난 시간의 기억들.
영화처럼 훌훌 털어버릴 수 있으면 좋겠지만,
영화 속 주인공이 그렇게 풀어내는 것에 대리만족하며 조금은 후련해진다.

아놀로그와 디지털 전환기를 겪으며 이제 은퇴를 고민하는 동지들에게 
이 영화를 함께 하자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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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lk R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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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친구는 가까이 두고,
적은 더 가까이 두어야 한다.

02. 절대 거절 못할 제안을 하지
(이게 미국 영화 명대사 2위에 꼽혔습니다.)

03.그게 우리 패밀리야..내가 아니야.

04.난 평생 부주의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
여자와 아이들은
경솔할수 있지만 남자는 안돼..

05.입은 닥치고 눈은 크게 떠라.

06.네 생각을 절대
남한테 알려서는 안된다.

07.우정과 돈은 물과 기름이지요.

 

08.금융은 총과 같고,
언제 방아쇠를 당길지
결정하는것이 정치다.

09.내 딸을 포기해라.
모든 건 값을 치뤄야 하는 법.
네가 선택한 인생의 대가다.

10.정치와 범죄의 본질은 같아.

11.적들을 미워하지 마라.
그러면 판단력이 흐려져.

12.형이 그런거 다 알아. 그래서..
내가슴이 찢어져.. 가슴이 찢어져..

13.형제끼리는 사과할 필요 없어.

14.남자는 마음속에
있는것은 말하는것이 아니다.

15.지금까지 우리가 알게 된것은
역사가 우리에게 알려준것은
이세상에 못죽일놈 없다는 겁니다!

16.결백하다고 말하지마,
그건 내 지성을 모독하는거야.

17.남자의 비즈니스에
대해선 질문하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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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었고,

가장 무서운 장면이었으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이전과 사뭇 달라지게 된 계기가 된 장면.

 

 

 

 

이제부터의 얘기는 모두 1급 비밀입니다
난 군인이었어요
국방성의 비밀요원으로 전세계에서 흑색작전을 했소
암살, 쿠데타, 선거조작, 선동, 심리전 2차대전 말 동구에서는 나찌 정보원을 구해내서
공산당과 싸웠고 48년 이태리 선거조작, 49년 프랑스 노동운동, 필리핀, 과테말라, 이란
54년 베트남 정권교체, 58년엔 인도네시아, 59년엔 티벳 달라이 라마도 빼냈고,
솜씨가 아주 좋았죠.

그런데 쿠바에서 망쳤소
62년 10월 침공 준비하다 소련과 협상으로 취소돼 할 일이 없어지자 몇 사람이 화가 났죠
그 얘기는 나중에 하고

난 1963년
9월 한달 내내 케네디 명령으로 월남철수를 계획했소
백악관의 안보메모 263호는 제1진의 성탄절 철수명령이오
그런데 11월 암살사건 나기 2주 전에 이상한 일이 생겼죠

(상관의 갑작스런 명령으로 남극에 보내지고)
Y 장군이 날 남극에 보낸 일은 몇 VIP의 경호였소
돌아오다 뉴질랜드에서 암살 소식을 들었죠
오스왈드는 7시에 구속됐는데
뉴질랜드 신문은 오스왈드에 대해 자세히 보도했소
사진, 자세한 경력 그가 틀림없이 범인이라고, 정식구속 4시간 전인데 말이오!
이건 틀림없는 위장전술이고 우리의 전문 수법이죠

돌아온 뒤에 왜 하필 나를 남극으로 보냈을까를 생각했소
내가 아마 미국에 있었다면 그날 나는 경호를 맡았을 거요
이상하게도 그날 112경호 팀에겐 대기명령이 떨어졌었소
통상적인 경우 댈러스같이 험악한 곳은 당연히 방탄차를 타고 길에는 무수한 요원이 깔리죠
불과 몇 달 전 유엔대사가 피습 당했고 드골 암살시도가 있었어요
사전에 건물을 철저히 조사하고 창문은 절대 못 열게 합니다
위험한 곳에는 우리 저격수들 배치하고 군중들 소지품을 조사하고 우산 같은 건 펴지 못하게 하죠
차량은 빠르게 이동하고 커브 코스는 피하고 당연히 군대도 배치하는데 그날은 그런 게 전혀 없었소
치밀한 각본이 준비됐던 거지
그걸 누가 했느냐?
바로 나같은 사람들이오

내 상관이 112경호 팀에게 대기명령을 내렸겠지
다른 요원들이 댈러스에 간 것은 틀림없지만 경호를 위해 간 건 아니었소
국방성의 오스왈드 기록도 전부 파기되었고 또 이상한 게 많았지
내각은 전부 극동에 나갔었고 독일에선 전투연대 병력이 들어오고 있었소
암살시각에 워싱턴 전화는 1시간 동안 불통이었소
상황실에서는 존슨에게 '단독범'이란 전문을 보냈소
그게 우연일까요?

- 아니오
- 절대 아니죠

내각을 미리 피신 시키고 폭동진압 병력 불러들이고 전화를 끊어 연락 차단하고.
완벽해요
빈틈이 없었소

그 뒤로 다 변했죠
월남전이 시작되고 국방성, CIA는 신임 얻고 워렌보고서는 더러운 내용을 다 숨긴 거요
난 워렌을 잘 알아요
케네디한테 쫓겨난 이가 암살사건 조사를 맡다니 그는 우리의 자문이오
난 64년에 제대를 했소

케네디가 그렇게 위험했나요?
죽여야 할 정도로?

문제는 '왜?'죠
'누가, 어떻게'는 별거 아니에요

오스왈드, 루비, 쿠바, 마피아 누구냐를 따지느라고 더 중요한 걸 잊고 있소
왜 죽였고? 누가 이익이고?
누가 은폐할 수 있죠?

1961년
피그만 사태 직후에 안보메모 55호는 최고 비밀인데
케네디는 국방성에서 비밀작전도 맡도록 했소
CIA를 없애려고 군대의 힘을 쓰려던 것이죠
그건 큰 충격이었고 곧 워렌 국장과 CIA 간부들이 파면됐소
이들이 거느리던 많은 사람들도 보수권력층이 케네디의 적이 된 거요

그 결과로 우리 부서에 몽구스 작전이 넘겨졌소
그 작전은 쿠바를 치려던 비밀작전이었죠
쿠바 난민을 이용해서 말이오
수억 불 예산에 요원 3백 명, 쿠바인 7천 명

50개의 위장업체로 카스트로와 싸우는 거지
산업테러와 곡물방화 Y 장군 지휘였소
이 흑색작전이 다 준비됐다가 막판에 중단됐소
예산도 깎여서 CIA 지부 73개를 없앴죠
문제는 돈이오

월남에서만 헬기가 3천대나 소모됐는데 벨 헬기회사가 누구 소유요?
파산직전에 CIA가 살려낸 거지
F-111 전폭기는?
제너럴 다이나믹스는 누구 소유죠?
49년에 1백억 불이던 국방예산이 현재는 1천억 월남전에만 2천억이 들 거요
전쟁은 돈이고,
그런 이권이 권력과 연결됐는데 케네디는 냉전을 끝내고 우주경쟁도 핵무기도 다 폐기하려 했소
쿠바를 포기하고 월남에서도 철수하려다 결국 암살당한 거지
월남전을 꺼릴 때부터 적이 생겼고 적은 소리없이 뭔가를 시작하고 있었소


케네디가 위원 모가지를 여럿 날리고 합참의장을 똥을 만들었지
가까운 쿠바에도 안 갔는데 먼 월남에는 왜 가냐 이거죠
 

1천억 불 예산은 큰 돈인데 케네디는 제멋대로 방위산업을 줄인 거요
그러니 큰 일이 난 거죠


월남전 정보를 잘 통제해요
월남 얘기만 나오면 합참의장도 겁을 낸다니까
앞으로 밤이건 낮이건 맥스가 감시하고 당신은 케네디를 맡아요
그렇게 시작됐고
결국은 Y 장군에게 연락했겠죠

실행합시다
언제요?
가을쯤! 남부에서 계획을 만들어 봐요
준비하죠


아무도 암살 얘기를 안 했고 책임도 안지는 교묘한 처형이죠
총살 때 공포탄 한 발 섞으면사수는 모두 죄의식이 없죠
아무도 자기 탓을 안 하니까
문제는 성공이오
어떻게든 성공만 하면 다 끝나 버리는 쿠데타니까!

텍사스 방문이 발표된 9월에는 계획에 따라 작전이 진행되고 있었죠

암살 팀은 특수훈련소나 프로 팀일 수도 있소
누가 쏘느냐? 그건 상관 없죠

아시겠지만
11월 26일 케네디 장례식 다음 날
아시아를 그대로 포기할 수 없소
우리는 월남에 개입합니다
안보메모 273호는 케네디의 철수계획을 취소하고 월남전에 개입한다는 것이고 이로 인해 통킹만 사태가 발생하죠
전쟁할 테니 날 재선 시켜!


그리고는
전쟁을 한 거요!
그 때문에 대통령을?
이 시대? 이 나라에서?
왕들도 많이 죽었소
도저히 못 믿겠소?
엄청난 문제군요
증언하겠소?
- 내가?
- 증언해요
절대 안 돼요
정신병원 아니면 죽게 될 거요
이제 배경을 알았으니 앞으로 나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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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좀비물을 좋아하는데 기대된다.

게다가 현빈, 장동건이라니....

조우진, 김의성과 같은 조연들의 책임이 막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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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가끔 인도영화를 본다.

몇년 전에 "세 얼간이"라는 영화를 봤고, 몇일 전 "당갈"을 봤다.

 

두 영화에서 느껴지는 느낌은 "친숙함"이었다.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 우리 영화에서 느껴지던 친숙한 감성.

좋은 메세지를 전하고자 하는 방향성 역시 당시의 우리문화와 비슷하여 친숙하다. (권선징악)

적절한 코메디, 적절한 신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전개, 서민들의 이야기, 휴머니즘...

그리고 절제된 인도 특유의 춤판(?) ^^

 

특히 두 영화 모두에 출연해서 극을 이끈 배우 "아미르 칸"의 연기에 감탄했다.

"세 얼간이"에서는 통통 튀는 수재 역할을, 당갈에서는 전직 레슬러 역을 매우 훌륭히 소화해 냈다.

그의 훌륭한 연기 덕분에 더욱 영화에 몰입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세 얼간이"는 학력고사 시절 명문대 입시열풍에 학생과 학부모가 고생했던 우리의 문화 풍토를 떠올릴 수 있었고,

"당갈"에서는 여성인권과 자식에게 아버지의 못이룬 꿈을 투영시키려 했던 지날날 우리 사회 풍도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 외에도 "당갈"은 엘리트스포츠, 권위주의 등 많은 사회문제를 매우 훌륭하게 극에 녹여 훈훈하고 코믹하며 감동적으로 표현하였다.

 

많은 감성들이 우리가 겪어보았던 지나간 감성이지만 공감할 수 있게 표현되어 친숙하고 편안하게 공감하며 감상 할 수 있었다.

 

과연 저러한 감성은 이제 우리에게 옛 이야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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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배우들도 많이 출연하고,

요즘 이슈와도 맞아떨어지는것 같고,

구체적인 스토리는 잘 모르겠지만 기대되는 작품.

 

포털에 소개된 스토리는

1990년대 중반 '흑금성'이라는 암호명으로 북핵 실체를 파헤치던 안기부 스파이가 남북 고위층 사이의 은밀한 거래를 감지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실화 모티브의 첩보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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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7"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영화 개봉 얼마전 인터넷에 뿌려진 예고편을 통해서였다.

예고편을 봤지만 그렇게 보고 싶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뻔한 민주화 쉬이 영화겠지 싶었다.


80년 5월 어린 꼬꼬마였던 나는 광주에 있었다.

전남 도청에서 차로 15분 정도 거리의 마을에 살고 있었다.

어렸지만, 난 그 날의 일들을 조각조각 기억하고 있다.

광주 지원동 어느 2층 주택.

어머니, 외삼촌, 여고생이었던 이모 그리고 꼬꼬마 나.

그 날이 있기 몇일 전 동내 사람들 사이에 전쟁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퍼졌고,

어머니는 만일을 대비해 비상물품들을 사야겠다며 나와 함게 동내 슈퍼에 갔었다.

양초, 성냥, 화장지, 라면 2박스, 통조림 등등....


그리고 그 날.........(그 날이 정확히 몇일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외삼촌은 친구 배웅을 위해 공용터미널(시외버스터미널)에 슬리퍼 차림으로 나갔고,

"주부" 어머니와 "여고생" 이모님은 "집 안"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중간쯤에 의자 2개를 들고 올라가 바람을 쐐며

함께 가지고 간 과일을 드시고 있었고, 꼬꼬마였던 나는 방 안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되었다.

(삼촌을 통해 들은 이야기로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친구 배웅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려던 외삼촌은 갑자기 군인들이 잡으려 달려드니 슬리퍼 차림으로 냅다 달렸다고 한다. 당시 외삼촌은 최민수 풍의 외모와 발군의 운동신경으로 체력에 자신있는 사람이었지만 그 때 만큼은 그냥 도망가야겠다 싶었다더라. 당연한거겠지...

도망치다 도망치다 조선대학교 뒷 산으로 올라 도망가면서 돌고돌아 집으로 돌아왔다.


그 사이 

"주부" 어머니와 "여고생" 이모님은 "집 안"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중간쯤에 의자 2개를 들고 올라가 함께 가지고 간 과일을 드시고 있었는데 그 때 그 두 분 사이로 총성과 함께 총알이 지나갔다.

다시 말하지만, 주부와 여고생이 집 안 계단 중간에서 과일 먹다 생긴 일이다.

두 분은 "엄마야~~" 소리와 함께 의자나 과일 쟁반은 커녕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하고 후다닥 집 안으로 들어오셨다.

그리고 방 안 한 구석에 꼬꼬마인 나를 밀어 앉히고 농(가구)에서 두꺼운 이불을 꺼내 날 뒤덮듯 덮으셨고,

그 위를 여고생인 이모님이 품듯 끌어안았고 어머님은 그 위를 다시 다른 이불로 감추듯 덮으셨다.

그리고 어머님도 다른 이불 하나를 뒤집어 쓰시며 이모님 위를 감싸듯 품었다.


암흑 속에 들려오는 것은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 뿐.

한 무리의 사람들 소리가 와~~~~하고 들려오더니 점점 멀어져갔다.

짐작으로 용화정사(절 이름) 쪽 산(언덕) 쪽으로 멀어져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2, 3분 뒤 타탕, 타다다다닷 탕... 하는 소리와 함께 와~ 하는 소리가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

그런 일이 몇번인가 반복 되었다.

난 어린 마음에 무서움 보다도, 이게 무슨 상황이지 하는 어리둥절한 마음으로 그냥 그렇게 그 날 밤을 지새웠다.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잠들었다가 일어나 보니 외삼촌은 집에 돌아와 계셨고,

어머니는 문을 열지 않고 조용히 식사를 준비해서 나를 먹이셨다.

한 참이 지나도록 조용하자 외삼촌이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와 담 너머를 살펴보셨고,

나도 따라 나가봤다. 동내에 내 친구 꼬꼬마들이 한 둘 보였다.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호기심에 나도 나가봤다.

바닥이 핏자국이 보인다. 탄피를 주은 녀석도 있었다.

당시 동내 슈퍼는 직사각형 철판으로 지금의 셧터 처럼 가게 문을 닫을 때 밖에 3, 4개로 막아서 덧대어 두는데 그 양철에 총알구멍 몇개가 보여 내가 그곳에 손가락을 넣었다 뺐다 한 기억이 난다.



그렇게 그 날이 지나고 시간이 흘러 광주에서는 종종 시위가 있었고,

도청에서 가까웠던 우리 동내, 내가 다녔던 국민학교(초등학교) 근처에서는 자주 최루탄 냄새 때문에 고생을 했다.

목이 맵고, 눈물이 났으나 외삼촌은 절대 손으로 눈을 비비지 말고 그냥 울면서 집에 와서 세수하라셔서 그렇게 울며 집에 온 날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어린 아이도 그렇게.....



시위대들이 외치는 것을 들어보면 "전두환 노태우 물러가라~"였는데, 

그렇게 시위를 했어도 전두환 뒤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었다.

어린 마음에 화가 났었다.

그렇게 시위를 해도 뭐 바뀌는 것도 없고, 그렇게 바꾸고 싶으면 지들이 공부 열심히 해서 높은자리 가서 바꾸면 될것 아냐...라는 생각을 (자주 최루탄 때문에 고생해서인지) 그 때부터 했던것 같다.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었던가, 중학생 때 였던가...

광주 한미쇼핑이라고 불렸던 건물 근처(인지 터미널 근처였든지 기억이....)를 지날 때 518 희생자 사진이라고 길거리에 전시되어 있을 것을 봤다.

지금 인터넷에 돌고있는 그 처참한 사진... 그 사진들이었다.

어린 눈에 얼마나 충격이었겠는가.

당시 내 심정은....................................................무서웠다. 

그래 난 무서웠다.



그래서 난 광주 518 관련 영화를 일부러 피해왔다. 어쩌면 외면일지도 모르겠다.

광주시민이었던 사람으로서 당연히 분개하고 지인들에게 알리기도 했지만,

이를 소재로 한 영화는 안보고 싶었다.

그래서 "화려한 휴가"도 "택시운전사"도 아직 볼 수 없었다.

송강호를 좋아해서 "택시운전사"는 꼭 보고 싶어 영화를 구해놓고도 난 아직 그 영화를 열어볼 수가 없었다.



오늘 본 이 영화 "1987"은 80년 광주가 나오지 않을꺼라 생각해서, 또 세간의 평가가 좋아서 뒤늦게 영화관을 찾았다.

그리고 난 몸을 부르르 떨며 눈물을 참지 못하고 흘려버렸다.

주변 다른 관객들은 별 반응이 없었던 장면.

대학 만화동아리실에서 80년 광주의 진실을 알려주겠다며 비디오를 틀어주었고, 영화 속 TV화면에서 계엄군에게 몽둥이를 얻어맞는 시민들이 나오는 그 장면이 나오면서부터....

그 장면이 흐름상 그렇게 슬픈 장면도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난 그 장면에서 몸을 부르르 떨며 눈물이 나오는 것이었다.

왜지? 왜 내가 울고 있는 것이지? 

더 나오려는 눈물을 애써 참으며, 닦아내면서도 계속 그 생각을 했다.



내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 세상은 우리 세대를 X세대라고 불렀다.

오렌지족이라는 사회용어가 나왔다.

세상은 우리 세대를 이렇게 평했었다. 

이 세대는 전쟁을 모르는 부모 세대 품에서 자랐으며,  부모 세대가 알았을 배고픔도 모르고 큰 세대이며,

풍요속에서 소비문화에 익숙한 해방 이후 존재한 적이 없는 문화적 풍요를 누린 세대라고...



그럴지도 모르겠다.

부자집 도련님으로 자라지는 않았지만, 부모님이 어릴적 겪으셨다던 배고픔은 겪지 않고 자란 것은 사실이다.

어린 시절 빈 병, 폐종이, 고철을 모아 팔았지만 그것은 생계를 위해서가 아닌 엿이나 다른 과자를 사기 위해서였다.

대학 입학전 집회, 시위하는 대학생 형, 누나들을 보면서도 응원보다는 비판적이었다.

때문에 입학 후 운동권 선배들의 권유에도 분명하게 선을 그었었다.

내가 1학년일 때 군제대 후 복학해서 4학년 졸업반에 걸쳐 있던 80년대 끝자락 선배들의 모습들은 뭐랄까 요샌말로 루져처럼 보였었다.  당시 내 눈에 비췬 그들은 술에 취해 있을 때가 많았고, 수업에 열의가 있지도 않았었다. 시국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했지만 열정을 잃고 좌절적인 분위기......... 


그 땐 몰랐었다.

그들이 어떤 시간을 보내고 그 때의 그 모습에 이르게 되었었는지....

몇일전 썰전에서 유시민, 박형준, 우상호 3 사람이 전두환 이후 노태우로 바뀌면서 민주화를 갈망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서야, 그제서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감히 내가 뭐라고.... 오만하게....




시간이 흘러 경기도 안산에 살며 세월호 참사 뉴스를 접했다.

화랑유원지에 분향소가 세워졌다는데 그런 사회적인 문제에 한번도 참석하지 않고 살았던 나조차도 도저히 안가볼 수가 없는 마음이 들었다. 더구나 나는 제주에서 1년 생활을 마치고 그 배로 인천에 온 적이 있었고, 참사가 있던 그 해 연휴에 가족과 함께 그 배에 차를 싣고 여행가자고 가족들과 계획도 세워뒀던터라 더더욱 남일 같지 않았다.



촛불집회......... 계속해서 나오는 뉴스 보도.

저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 아니 이게 나라냐를 외치고 있었다.

한 번은, 아무리 못해서 한 번은 저 곳에 참석해야 나중에 아이들에게 할 말이 있을것 같았다.

그래서 참석했다고 말하기도 뭣하지만, 가서 촛불을 든 한 명이 되어 봤다.


사회적으로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분향을 세월호 참사 때 처음 해봤고,

정부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내는 집회를 촛불 때 처음 해봤다.

만약 이런 경험이 없이 이 영화 "1987"을 만났다면 지금의 이 느낌과 같았을까?




영화가 끝나고 일어날수가 없었다.

영화가 끝난 뒤 이렇게 마음 무거웠던 적이 없었다. 역시 처음 겪어본 일이다.



미안했다.

미안했다.

지날 날 선배들을 루져라고 생각했던 내 자신이 한심하고 부끄러웠다.


그리고 고마웠다.

지금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대통령 선거 때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는 세상....을 우리는 저들의 피와 죽음의 희생 위에 누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너무도 당연하게....



이 영화를 잘 만들어 준 감독과 배우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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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인의 자객

미이케 다카시 감독 작품으로 2010년 부산국제영화제에도 출품되었던 작품이다.



여느 사내아이들 처럼 어려서부터 액션영화를 좋아해서 중국 홍콩 액션, 무술영화 한국 액션영화를 좋아했다.

일본의 액션 영화도 무척 궁금했지만 국내에서는 접할 기회가 적어 많이 보지 못했지만,

이젠 세상이 좋아져 일본의 많은 영화를 접할 기회가 생겨 흐뭇하고, 새삼 놀랍기도 한다.



내게 일본의 액션 영화는 크게 야쿠자 영화와 사무라이 영화, 이 둘에 관심이 가는데, 그 중 사무라이 영화가 더 재미있더라.

그 사무라이 영화들 중 가장 맘에 드는 영화를 꼽으라면 주저없이 이 영화 "13인의 자객"을 꼽겠다.

이 영화 외에 지금껏 접한 사무라이 영화는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짤막하게 지금까지 내가 접한 사무라이 영화들에 대한 주관적인 느낌을 적어 본다면,


 


 

사무라이 픽션 : 유쾌하고 광고 느낌이 나는 다소 만화 느낌도 있는 작품

카게무샤 : 사무라이 영화라기 보다, 전쟁물. 역사물.

7인의 사무라이, 요짐보 : 스토리 좋고, 스타일도 좋지만 너무 옛날 (흑백)영화라 생생함이 떨어짐.

                                게다가 원작보다 헐리웃 리메이크 작품을 먼저봐서 신선함이 떨어진 면도...

                                물론 원작은 원작데로 좋아함.

자토이치 : 액션 좋고, 스토리 좋지만, 기타노 다케시 색채가 너무 강함.

(영화) 바람의 검심 : 만화를 영화화한 일본 영화 중 수작. BUT 만화가 원작인 것에서 벗어나지 못한 부분이 많이 보임.

                          (뭐 만화가 원작이니 굳이 벗어날 필요는 없지만, 내 주관적인 느낌의 사무라이 영황서는 다소....)

무사의 체통 : 사무라이는 소재이고, 부부간의 사랑 이야기에 방점.

고하토 : 사무라이 + 역사 + BL (응?).............그런데 그 조합이 지루함.

아라가미 : 판타지물 느낌

이조 : 이건.... 이건.... 이건 피해야 함. 왜 봤을까. 그래도 이 작품이 있어 지금 쓰려고 하는 "13인의 자객"이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으로 너그럽게 넘어간다. (같은 감독 작품)

필사의 검 토리사시 : 마지막 한 장면만을 위해 만든 작품. 그런데 그 한 장면을 보고 나면 짜증이 남.

(영화) 무한의 주인 : 역시 만화가 원작임을 여실히 느낄 수 있음. 안죽어...아무리 찔러도... 그게 소재라서 할말은 없지만...

바람의 검 신선조 : 스토리 좋고, 비장미, 반전도 있는 좋은 작품. 13인의 자객에 비해 액션과 임펙트는 다소 약한 느낌(?)




써놓고 보니 사무라이 영화를 제법 봤다 싶다.

저 중 이 영화 "13인의 자객"이 내 주관적인 느낌의 사무라이 영화에 가장 근접하다 하겠다.
그럼 내가 원하는 사무라이 영화는?

 


 

1. 역사를 소재로 할 것. 살짝이라도...

2. 진중할 것. 

3. 지나치게 과장되거나, 지나치게 폼잡지 않았으면.... (이게 사실 가장 어려운 부분이고, 이 영화도 아니라곤 말 못함)

 


 


어쨌든, 위에 나열한 영화들 중에선 가장 이에 부합되는 영화가 "13인의 자객"이지 않을까 싶다.

나름 철학도 있다.


"어질지 못한 주군은 만백성을 위해 제거해야 한다"   VS   "어질지 못한 주군이라도 충성을 해야함이 무사의 도리이다"


만화적 케릭터를 넣어 다소 무거움을 덜어낸 장치도 보이고...

후반의 접전 장면이 꽤 긴 편이라 지루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나쁘지 않았다.

이러한 느낌의 사무라이 영화를 좀 더 보고 싶지만, 아직도 여전히 정보가 부족해서 접하기 어려운게 아쉬움.

그래도 예전 보다는 접하기 좋은 시대임에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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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lk R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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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역사 영화다.

영사 영화를 좋아한다. 영화를 통해 역사를 좀 더 생동감 있게 알 수 있다는 것은 큰 매력이 아닐 수 없다.

때문에 역사를 자기 멋데로 구성하여 만든 판타지에 가까운 역사물 보다는 정통 역사에 기반을 둔 작품들을 선호한다.

이 영화 남한산성은 비록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근래 판타지 혹은 재구성 역사물에 비해 정사에 기반을 둔듯하여 마음에 든다.


역사 영화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이 영화를 보기 전 그 배경지식을 살펴보자.


이성계부터 거슬러 올라가면 너무 멀고, 임진왜란부터 살펴보자.

보통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그 이전을 조선 전기, 임진왜란 이후를 조선후기라고 구분하곤 한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임금은 선조. 

선조를 대신해서 동분서주 했던 이가 선조의 아들 광해.

임진왜란 당시 광해의 모습을 알고자 한다면 이정재, 여진구 주연의 "대립군"이라는 영화가 참고가 될듯.


임진왜란

조선은 선조25년 (1592년) ~ 선조31년 (1598년), 무려 6년여 기간동안 전쟁을 치른다. 

(이 기간은 정유재란을 포함한 기간)



그뿐이랴. 의외로 사람들이 임진왜란에 가려 잘 모르는 정유재란


정유재란 1597년 ~ 1598년

임진왜란으로 모든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라, 잠시 휴전중이었다는 것이 맞겠다.

부산을 비롯하여 왜가 점령하고 있는 남해 지방에 왜의 병력이 주둔한 상태로 명나라와 왜의 협정으로 전쟁이 소강상태에 있다가 재차 다시 공격을 시작한 전쟁이 정유재란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기간동안 부산을 비롯하여 영남 지방이 상당기간동안 왜에게 점령 상태였다는 것.

그 기간 동안 백성들은 왜에게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고 있었겠는가도 짐작해 봐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긴 오랜 기간을 전쟁을 치루면서 조선의 국력은 크게 쇠하였다.

오죽하면 조선을 도우러 원군을 보낸 명나라 마져도 휘청하여 이후 중원의 주도권을 빼앗기게 되었을 정도이니, 전쟁 당사국인 조선을 말해 무엇하랴.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전쟁 후 선조가 죽은 뒤 왕이 된 광해는 (이 시기를 다룬 영화가 문재인을 울린 영화 "광해"이다) 쿠데타(반정)에 의해 폐위되고, 새롭게 왕이 된 자가 바로 인조 이다. 

(그래서 그 쿠데타를 인조반정 이라 부른다... 이 시기를 다룬 영화가 조재현, 최민수 주연의 "청풍명월")



오랜 전쟁으로 피폐해진 조선에서 나라를 바로 세우려고 노력해도 모자랄 판에 반역을 일으켜 왕이 된 인조.

그럼 그 인조가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데에 매진했느냐... 그것도 아니다.

자신의 힘으로 왕이 된 것이 아니라 반역 세력의 힘을 얻어 왕이 되었기에 이때부터, 즉 조선 후기부터는 권력의 중심이 임금보다 권문세족(힘있는 신하집단)으로 점점 넘어가게 된다. 인조 또한 정통성이 부족하여 부국강병 보다는 자신의 정통성을 세우는데에 더 열을 올리는 모습들도 발견된다.



조선이 이렇게 헛발질 하고 있는 동안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제정세는 어떠했나.

위에서 언급했듯 임진왜란에 원병을 보내고 명나라가 휘청해지는 틈을 타 세력을 키운 곳이 바로 누르하치를 중심으로 한 후금. 그 누르하치가 죽고 뒤이어 정권을 잡은이가 홍타이지.

선대 누르하치와 달리 새롭게 정권을 잡은 홍타이지는 조선을 곱게 보지 않았는데, 이는 자신들이 힘을 키워 명나라와 으르렁 거릴 정도가 되었음에도 조선이 명나라만을 섬기고 자신들을 무시하니, 혹시라도 명나라와 전쟁 중에 조선이 명나라를 도와 자신들의 옆구리를 찌르면 곤란하기에 조선 길들이기에 나선다.


명나라를 어버이의 나라로 섬긴다면, 우리 후금을 형의 나라로 모셔라. 너희는 동생이 되고.

(그리고 형의 나라에 조공을 보내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고)

조선의 입장에서는 당장에 명나라가 더 큰 나라로 보이고, 양쪽으로 삥 뜯기고 싶지도 않으니, 또 임진왜란 때 도와준 명나라이기도 하고, 명나라를 짝사랑하는 신하들과 국민정서가 있다하여 후금에세 쌀쌀하게 대한다.


이에 열받은 후금이 조선을 침략한 전쟁이 "정묘호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라는 큰 전쟁을 이제 막 치르고 그 이후로도 나라를 재정비하는데 게을렀던 조선이 후금의 침입인 정묘호란을 감당하기는 역시 벅찼다. 연전연패. 결국 인조는 후금에게 꼬리를 내리며 굴욕적인 외교를 하는 것으로 전쟁을 마무리 한다. 이 이후 조선은 후금에게도 삥을 뜯기며 백성은 더욱 고생하게 된다.

(이 때 고생하는 조선 백성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영화가 "최종병기 활")


그 이후라도 인조를 비롯한 조정은 부국강병의 필요성을 깨닫고 거기에 힘을 쏟아야 하는데, 인조는 자신의 아버지 추승 사업에 힘을 쏟으며 그를 통해 자신의 정통성을 확보하는데에 골몰하였다. 추승 작업이 끝나 어느 정도 정통성이 확보되었다고 생각이 들자 근거없는 자신감과 오만함이 생겼던지 정묘호란 때에 자신에게 치욕을 주었던 후금에 설욕하고 싶은 마음이 커지며 후금에 대해 다시 쌀쌀맞은 외교를 시작한다.


이에 다시 열받은 후금이 재차 쳐들어온 전쟁이 이 영화 "남한산성"의 배경이 되는 "병자호란"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돌아본 문제는 인조의 쿠데타에 의해 축출된 광해와 인조의 외교에 대한 입장이다.

임진왜란 동안 동분서주하며 전쟁을 치룬 광해는 국제(동아시아)사회에서 조선의 역량을 뼈져리게 경험하고 명나라 뿐만 아니라 후금을 비롯 주변국들과 줄다리기 외교를 펴서 시간을 볼며 국력을 회복하고자 하였으나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명나라에 치중한 외교를 지지하는 세력인 인조 그러한 광해를 축출하고 임금이 된 것이다.

그렇게 정권을 잡았으면 인조는 "정묘호란", "병자호란"이 일어나게 하질 말든지, 일어났더라도 그렇게 추종하던 명나라 원군이라도 불러들여 후금을 쫓아냈어야 마땅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이는 명백한 인조와 그의 세력들의 국제정세를 잘못 읽은 책임이 크다.

그들이 잘못 판단해서 그들이 수치를 겪고 고생한거야 그들 스스로 불러들인 결과이니 그렇다치더라도,

그 사이 백성들은 어떠했던가.

이 영화의 주제은 바로 거기에 있다 하겠다.



장황하고 길게 역사 이야기를 썼는데 당시 조선의 백성들의 입장에서 저 시대를 돌아보니,

임진왜란 - 정유재란 - 정묘호란 - 병자호란

엄청난 규모의 큰 전쟁을 저 짧은 기간동안 무려 4번을 겪은 것이다.

쉽게 말해서 어떤 사람이 625 전쟁을 일생 동안 4번 겪었다고 생각해 보자.



재산이 남아나겠나, 가족이 살아있겠나, 본인은 팔다리 멀쩡하겠나 아니 살아나 있겠나.

여인들은 전쟁통해 온전했겠나. 노인과 어린 아이들은 어떠했겠나.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그 삶이 어떠했겠나.

피난다니거나 전쟁통에 끌려다니거나 하며 죽을 고비를 숱하게 넘겨야 했을 것이다.


왜?


정치하는 자들의 어리석음 때문에...


영화 남한산성은 정치하는 자들이 어리석으면 백성들이 어떤 삶을 살게 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영화 속에서 당시 정치하던 임금과 신하라는 작자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에 연연하며 엉터리 짓을 하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 사이에 백성들은 계속해서 죽어나가고 있다. 동상이 걸리고, 어이없는 죽음을 당하기도 하고...

그 와중에도 저희들은 먹을거 잘 먹고, 따뜻하게 있으며 치욕이 어쩌고, 명분이 어쩌고를 말하며 눈물을 쏟고 있다.



현재도 마찬가지다.

오늘의 대한민국 주변을 보자.

멀리 미국이 있고, 머리 위에 중국, 러시아 그리고 북한이 있다.

그리고 아래로는 일본이 있다.



인조가 임금이던 조선시대 보다 더 쉽지 않은 국제 정세 속에 놓여져 있다.

다행이 오늘날의 정치는 국민의 선택으로 결정할 수 있다.

어리석은 정치인을 잘 골라내서 엉터리들이 정부를 운용하여 국민을 사지로 내모는 상황을 만들지 않도록 늘 깨어있어야 함을, 이 영화 "남한상선"은 말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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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lk R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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