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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 람 이 어 라 Silk R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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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알게 된 것은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이라는 뉴스를 통해서였다.

 

 

어떤 영화일까?

좋아하는 양조위 주연의 영화다.

시간 되면 볼까...

시간이 흘러 거리에 영화 포스터가 여기저기 붙었다.

완전 무삭제 "색계"

 

 

국제 영화제에서 상받은 작품을 저렇게 홍보하는.....

이건 아닌데......

씁쓸했다.

 

 

물론 영화 속에서 배드씬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고, 그것은 흥행에 중요 요소일 것이다.

이 영화에서 내게 가장 인상적인 장면들 뽑으라면 역시 비정상적으로 격한 배드씬과 술자리 장면이니까.

 

이 영화의 배드씬을 보면서 성적 흥분을 느끼지 못했다.

왜냐면 그 장면에서는 사랑도, 에로틱함도 느껴지지 않았고,

그저 불안과 정복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상대 남자를 죽이는걸 목적으로 그와 섹스하는 여자.

죽음에 위협 속에서 누구도 믿지 못하는 중압감으로 내면에 쌓인 그간의 스트레스를 풀듯,

의심하며, 불안해하며 정복하듯 섹스하는 남자.

이런 이 두 남녀의 베드씬을 보며 성적 흥분을 느낄 수는 없겠지.

 

 

그저 둘 다 불쌍해보일 뿐...

 

이 가련하고 불쌍한 두 남녀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내게 인상적이었고, 하일라이트라고 생각되는 장면.

 

 

일본인 거리에 있는 술집.

남자는 그곳으로 여자를 초대한다.

중국 內 일본인들의 거리. 일본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술집.

술집주인이나 점원, 손님 모두가 일본인들로 둘러 쌓인 그곳에 중국인인 주인공 남녀가 자리한다.

 

옆 방에서 들려오는 일본노래 소리에 그것보다 자신이 더 잘 부를 수 있다며 노래를 부르는 여인.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노래는 중국노래다. 일본인들로 가득한 그곳에서...

일본의 앞잡이가 된 중국인인 남자는 그녀의 중국 노래에 빠져들고 눈물을 흘린다.

 

남자는 그 술집에 있는 군인들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패망을 예견하고 있다.

남자는 침몰해가는 일본이라는 큰 배에서 이젠 내릴수도 없는 처지로 여인이 부르는 중국노래에 눈물 흘리며 여인을 끌어안는다. 마치 그 둘의 미래를 예견하듯...

 

 

가학적 혹은 이리저리 비틀린 체위의 섹스는 남자의 내면 그 자체였고,

일본거리 술집에서의 둘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오히려 선명하게 나타낸다. 

 

이 영화에 사랑 따윈 없었다.

지독한 외로움과 자기 내면의 고통에서 벗어나고파 몸부림 치는 남자와

그 남자를 죽이려고 접근했다가 그 남자에게 결정적인 순간 흔들림 혹은 혼란을 겪은 여자가 있을 뿐이다.

각자의 그것을 사랑이라 말 할 수 있을까.

 

 

사랑이 아닌 사랑을,

사랑일까 하는 찰라의 혼란에 빠진 남녀,

섬세하게 그린 감독과 멋지게 표현한 "역시" 양조위.

좋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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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삼 - 주윤발

 

이 둘의 이름이 곧 상표였고,

이 둘의 이름이 곧 흥행보증이었으며,

이 둘의 이름이 곧 영화색깔을 결정해 버렸던 시절이 있었다.

 

동서양 수 많은 남성들의 싸나이 로망에 불을 붙였던 이 둘.

 

 

그 중에서도 가장 선이 굵은 작품 둘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영웅본색.

그리고 이 영화 첩혈쌍웅을 꼽겠다.

 

 

킬러(주윤발), 형사(이수현)

이 둘은 쫓고 쫓기는 관계에서 진한 우정의 관계로 변해간다.

 

 

의뢰를 받고 암살을 하던 중 관계없는 여인의 눈을 멀게 한 킬러.

죄책감에 킬러는 그녀의 곁을 맴돈다.

 

킬러의 길을 접으려는 남자.

하지만 각막 수술을 하지 못하면 시력을 영영 잃을지도 모르는 그녀 때문에

킬러는 그녀의 수술비 마련을 위해 마지막 의뢰를 받아들인다.

 

 

총탄과 살육이 난무하는 가운데

죄책감, 우정, 사랑으로 버무려진 감정을 

킬러와 형사 그리고 한 여인을 통해 화려하고 붉게 그려진다.

 

 

영화의 후반부.

두 눈과 온 몸에 총상을 입은 킬러.

킬러는 자신 때문에 시력을 잃은 여인에게 자신의 눈이라도 주고자 했지만,

총상으로 눈을 이식해 줄 수 없게 됨이 안타까워 괴로워하며 몸부림치고 그런 그의 모습은

말 보다는 행동으로 사랑하는 여인을 향한 한 사내의 모습을 뭉클하게 보여준다. 

 

 

앞을 못보는 킬러와 앞을 못보는 여인은 서로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며 서로를 찾지만 ......

결국 가까이 있는 서로의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한체 킬러는 숨을 거둔다.

 

 

오우삼 감독의 총격씬은 화려하기로 유명하다.

특히 이 영화 첩혈쌍웅은 그 화려함의 극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매력은 그런 화려함이 아닌 우정과 애절함일 것이다.

이 영화가 수 많은 사내들에게 가슴 깊히 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사내들의 우정과 사랑과 책임감, 죄책감을 사내들이 진하게 공감할 수 있게 작품들에 잘 녹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 때문에 시력을 잃은 여인이 노래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킬러의 모습.

둘 모두 시력을 잃고 서로를 찾아 헤메이던 모습.

이 장면들은 오래도록 여운으로 내 안에 맴돌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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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0년.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브라질 국경 지역에서 일어난 역사적 실화.


이 영화는 내겐 풀어야할 숙제같은 영화였다.
로버트 드니로에 푹 빠져있었던 오래전 그 때에는 금방이라도 보고 싶었던 영화였고,
영화음악에 빠져 Ennio Morricone의 음악이 좋았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어릴적 나에게는 아직은 지루하고 어려운 영화였기에
그저 언젠가는 봐야지 하고 미뤄두었던 영화였다.

 


시간이 흘러 우연처럼 이 영화를 떠올렸고,

차분한 마음으로 영화를 감상했다.

 


영화를 보면서 난 점점 화가 났다.
남의 나라 땅에 外人들이 들어와 토착민들을 힘으로 장악한 상태에서
사랑? 용서? 평화?


전쟁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행위이다.
힘으로 남의 것을 가로챈 뒤에,
빼앗긴 자에게 그들에게 이미 빼앗은 것으로,
아량을 베풀고, 자비를 베풀고, 사랑과 평화를 운운하는 것.
위선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영화 속 신부님들은 숭고했다.
끝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자 했던 가브리엘 신부(제레미 아이언스)
현실적인 방법으로 토착민에게 힘이 되어주고자 했던 멘도자(로버트 드니로)
멘도자와 함께 힘을 보탠 어린 신부
(리암 리슨... 그의 풋풋했던 젊은 날의 모습을 보는 재미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보호하고자 했던 토착민들은
신부님들과 마찬가지인 外人들의 손에 무참히 죽어갔다.
살아남은 토착민들 역시 노예가 될 것이었다.

모두 다 그 外人들이 그 지역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생기지 않았을 사건들이다.

 


그리고 영화 마지막,

'신부들은 죽고, 저만 살아 남았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죽은 건 나고, 산 자는 그들입니다.

그것은 언제나 그렇듯 죽은 자의 정신은 산 자의 기억 속에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라는 말로 끝을 맺는다.

 

저 말 속의 죽어서 기억에 남게 되는 사람은 함께 싸우다 숭고하게 죽어간 신부들을 말한다.
토착민의 죽음은?


처음부터 그들에게 外人들이 들어오지 않았다면 토착민들은 하나님을 몰랐겠지만, 근대화 되지도 못했겠지만,

그렇게 무참히 학살당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철저하게 서양인 관점에서의 Mission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역사에 가정이란 없다.
약한 세력은 센 세력에게 약탈당하고 짓밟혀 왔다.


힘, 평화, 사랑, 역사
그리고 종교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씁쓸한 영화였다.

 

또한

종교는 가장 무서운 비지니스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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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 (The Godfather)

 


처음 이 영화를 접했던 것은 10살 즈음 TV에서였다.
당시의 나는 오만하게 처음 몇 장면으로 그 영화의 재미를 가늠할 수 있다고 자부하는 상태였었고, 딸의 결혼식 파티 뒤에서 벌어지는 여러 청탁 장면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는체 그냥 지루한 영화라고 치부하고, 인디에나 존스 같은 화려한 볼꺼리가 없음에 불만을 품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3분여 정도 더 보다가 다른 채널로 돌려버렸었고, 그게 영화 대부와 나와의 첫 만남이었다.

 
몇 년이 더 흐르고 중학생이 되어 우연히, 역시 TV에서 이 영화를 다시 접했지만 그때에도 처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에 비디오로 대부를 다시 접하게 되었다.
그제서야 조금은 스토리가 눈에 들어왔고 이 영화가 명작이라 불리는 이유를 아주 조금 알게 되었을 뿐, 깊히있게 이해하지는 못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여러 아르바이트를 해 보고 대학생활 및 군생활을 겪은 뒤 사회생활을 하면서 다시 접한 영화 대부는,

한 마디로 거대한 쇼크였다.
그때껏 영화를 통해 받은 자극 중 그렇게 묵직한 자극은 없었다.

그 어마어마하고 묵직하며 거대한 충격 혹은 감독은 아주 오래도록 무겁게 내 가슴을 짓눌렀으며 긴 파장을 일으켰다.

 


왜 이렇게 대부를 봐 온 이야기를 장황하게 했는가..?

 


그건 대부가 오래된(1972년작) 작품으로 다른 이들에게도 이런 비슷한 경험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나 역시 여러 번 대부를 봤고 볼 때 마다 그 느낌이 달랐으며,
근래 다시 이 영화를 접했을 때에야 비로서 이 영화의 진가를 느낄 수 있었기에 혹시라도

이전에 비슷한 경험으로 따분하고 재미없는 영화로 치부하고 이름만 알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기꺼이 이제라도 느긋하게 봐 볼 영화라고 권해보고 싶다.

 

볼 때마다 느낌의 포인트가 달랐는데 이번에 내가 느낀 영화의 주된 흐름은 "아버지"였다.
특히, 마론 브란도가 열연 했던 역 비토 꼴레오네 라는 인물.

 


단신으로 어린나이에 미국으로 건너 온 그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가족에게 내색하지 않고 가정을 꾸려나간다.(대부 2)
조금씩 조직이 커가도 그의 그러한 성품은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믿음직해져 간다.

 

 


그는 식탁에서는 비지니스 얘기를 꺼낸 적이 없었으며,
가족사진을 찍을 때 가족 중 한 사람이라도 빠지면 사진을 찍지 않으려고 버텼으며,
딸의 결혼식의 참석한 사람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으며,
살아있는 자식의 안전을 위해 죽은 아들의 복수를 가슴에 묻었다.

 


그리고

 


어린 손주와 화원에서 오붓한 시간을 보내다 심장 이상으로 그의 힘들고도 고단한 삶을 내려놓는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고생하시는 어머니만을 조명하는데 여념이 없다.
상대적으로 아버지의 존재감이 사회적으로 빛을 잃어가고 있다.

 

 

IMF를 겪으며, 아버지라는 이름의 그들은 더 한층 위축되었으며 어려운 시절을 요행이 피했더라도

명퇴되거나 구조조정으로 정리해고, 은퇴 후 더더욱 힘을 잃어가고 있는, 아버지.

 


그들이 가정을 꾸리고, 유지하며, 지켜오기까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는지 우리는 모른다.

아니 모른척 하거나,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다.

 

 

왜냐면,

아버지 당신 조차 그것을 내색하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버지 비토 꼴레오네 처럼 말이다.

 

 

그는 자신의 자리를 물려준 뒤에는 그저 자식을 걱정하며,

손주와 여가를 보내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할아버지가 되었다.

정원에서 뛰노는 손주의 재롱에 흐뭇해하며, 손주를 쫓아다니는 평범한 나이든 아버지.

 

 

어려웠던 시대,

어려웠던 시절, 역사의 소용돌이 속을 안간힘으로 헤쳐나가며

살아남기 위해 궂은 일, 비굴한 상황을 감내해가며 가족에게 조금이라도 더 많은 안락을 주고자 애썼던 아버지.

 

속된 표현으로 "부랄 두쪽" 밖에 없이 맨 바닥에서 지금의 이 모든 것을 일궈온 아버지들.

 

이 영화를 보며 그런 아버지를 가슴에 담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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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의 감상을 써봤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영화는 다른 영화와 달리

 

대강의 스토리와 남자 주인공인 로버트(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편지,

 

그 이상은 남길 필요가 없을것 같다.

 

 

 

 

<스토리>

가족묘지가 있는데도 어머니는 화장해 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화장해서 로즈만 다리에 뿌려 달라는...
어머니의 유언이 선뜻 내키지 않는 아들과 딸은 변호사를 설득하며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한다.


<내셔널 지오그라피> 한 권과 일기장...
영화는 어머니의 일기장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

 

시계의 초침소리조차 한숨 소리로
들릴 것 같이 고요한
매디슨 카운티의 농가로 이어지는
구불 구불한 산길을 초록색 픽업 한 대가
아지랑이같은 먼지를 일으키며 다가와 멈추어 섰다.


문앞에 서 있던 프란체스카는
조금 전에 남편과 두 남매를
축제에 보내느라 배웅하고
먼지를 일으키며 다가오는 픽업을 바라 보고 있었다.


픽업을 타고온 남자는
뚜껑이 있는 다리를 아느냐고 묻는다.
뚜껑이 있는 다리 ..? 아하 ~ 로즈만 다리...
그의 이름은 "로버트 킨케이드"
내셔녈 지오그라피의 사진기자 였다.

프란체스카는 위치를 설명하려다가
자신이 안내하는 편이 낫겠다고 한다.

 

다리에서 로버트는 사진을 찍고,
프란체스카는 구경을 했다.
로버트는 감사의 표시로 들꽃을 꺽어
프란체스카에게 주었다.
"그 꽃엔 독이 있어요..."
프란체스카의 말에 꽃을 떨어뜨리는 로버트..
그의 놀란 모습을 보고
그녀는 즐겁게 웃으며 농담이었다고 말한다.
두사람이 함께 보낸 즐거운 한낮의 시간은
프란체스카와 로버트의 일생을 바꾸어 놓은
나흘 중에서 그 첫날이었다.

다음날, 프란체스카는 뚜껑있는 다리에
저녁 초대 편지를 꽂아 놓았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 날 밤을 함께 보낸다.

 


........................

여기까지 일기장을 읽던 아들이 뛰쳐 나갔다.
딸 또한 어머니에게 놀라움과 배신감이 일지만,
그래도 다시 일기장을 펼쳐 든다.


........................

 


그들은 호젓한 행복을 맛보지만 시간은 예정되어 있었다.
" 이렇게 확실하게 느낄수 있는 사랑은 일생에 단 한번 뿐."
이라고 설득하는 로버트를 떠나보내며
프란체스카는 가족들을 미소로 맞이 했다.
송아지가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고 흥에 겨운 남편과
아이들 뒤로 멀리 빗속에 로버트가 서 있었다.

 


다음날

남편과 시내에 나갔던 프란체스카는
교차로에서 로버트의 픽업과 마주친다.
프란체스카의 차앞을 가로 막은채 움직이지 않는
로버트의 픽업을 바라보며,
그녀는 수도 없이 차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놓으며 망설였다.
그러나 당장에 문을 열고 달려 가고픈
그녀의 눈물을 바라보는
남편의 걱정어린 표정이 그녀의 발목을 붙잡는다.
로버트의 차는 뒤에서 울려대는
크랙션 소리에도 아랑곳 없이
한 동안 빗속에 멈춰 있다가 서서히 움직이더니
교차로 반대 쪽으로 사라져 갔다.

 


.......................

 

그 후로 오랜 시간이 지나갔다.
남편은 임종을 맞으며 아내에게 말한다..
" 당신에게도 꿈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
아내는 말없이 남편 옆에 누워 미소 지었다.

또 다시 오랜 시간이 지나고,
어느날 프란체스카에게 뚜껑있는 다리 사진이 실린
내셔녈 지오그라피 한권과
로버트 킨케이드의 유품이 들어있는 작은 소포가 도착했다.


..................................

 

어머니는 뒤에 남은 아들과 딸에게 부탁한다.
그 때 로버트 킨케이드를
따라가지 않은 것을 후회하진 않는다고,
그러나 살아서 후회 없이 가족들을 사랑했으니,
죽어서는 그의 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그에게로 보내 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


............................


프란체스카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위에 뿌려졌다.

 

 

 

<로버트의 편지>

이 편지가 당신 손에 제대로 들어가길 바라오.
언제 당신이 이걸 받게 될지는 나도 모르겠소.
내가 죽은후 언젠가가 될거요.
나는 이제 예순 다섯 살이오.
그러니까 내가 당신 집 앞길에서 길을 묻기 위해
차를 세 운 것이 13년 전의 바로 오늘이오.

이 소포가 어떤 식으로든
당신의 생활을 혼란에 빠뜨리지 않으리라는데
도박을 걸고있소.
이 카메라들이 카메라 가게의 중고품 진열장이나
낯선 사람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참을 수가 없었소.

당신이 이것들을 받을 때 쯤에는 모양이 아주 형편없을 거요.
하지만 달리 이걸 남길 만한 사람도 없소.
이것들을 당신에게 보내는 위험을,
당신으로 하여금 무릅쓰게 해서 정말 미안하오.

나는 1965년에서 1975년까지 거의 길에서 살았소.
당신에게 전화하거나 당신을 찾아가고픈
유혹을 없애기 위해서였소.

깨어 있는 순간마다 느끼곤 하는 그 유혹을 없애려고,
얻을 수 있는 모든 해외작업을 따냈소.
"빌어먹을, 난 아이오와의 윈터셋으로 가겠어.
그리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프란체스카를 데리고 와야겠어."라고
중얼거린 때가 여러 번 있었소.

하지만 당신이 한 말을 기억하고 있고,
또 당신의 감정을 존중해요.
어쩌면 당신 말이 옳았는지도 모르겠소.

그 무더운 금요일 아침,
당신 집 앞길을 빠져나왔던 일이 내가 지금까지
한 일과 앞으로 할 일 중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는 점만은 분명히 알고 있소.
사실, 살면서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을 겪은 사람이
몇 사람이나 있을지 의아스럽소.

나는 마음에 먼지를 안은 채 살고 있소,
내가 표현할 수 있는 말은 그정도요.
당신 전에도 여자들이 몇 몇 있었지만,
당신을 만난 이후로는 없었소.
의식적으로 금욕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고,
그냥 관심이 없을 뿐이오.
한번은 사냥꾼의 총에 제 짝꿍을 잃은 거위를 보았소.
당신도 아다시피, 거위들은 평생토록 한쌍으로 살잖소.
거위는 며칠 동안 호수를 맴돌았소.
내가 마지막으로 거위를 봤을 때는
갈대밭 사이에서 아직도 짝을 찾으며 헤엄치고 있었소.
문학적인 면에서 약간 적나라한 유추일지 모르지만,
정말이지 내 기분이랑 똑같은 것 같았소.

안개 내린 아침이나 해가 북서쪽으로 이울어지는 오후에는,
당신이 인생에서 어디쯤 와 있을지,
내가 당신을 생각하는 순간에 당신은
무슨 일을 하고 있을지 생각하려고 애쓴다오.
뭐, 복잡할 건 없지.
당신네 마당에 있거나, 현관의 그네에 앉아 있거나,
아니면 부엌의 싱크대 옆에 서 있겠지.

그렇지 않소?

나는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소.
당신에게 어떤 향기가 나는지,
당신에게 얼마나 여름 같은 맛이 나는지도.
내 살에 닿는 당신의 살갗이며,
사랑을 나눌 때 당신이 속삭이는 소리.

로버트 펜 워렌은
"신이 포기한 것 같은 세상"이란 구절을
사용한 적이 있소.

내가 시간에 대해 느끼는 감정과
아주 가까운 표현이오. 하지만
언제나 그런 식으로 살 수는 없잖소.
그런 느낌이 지나치게 강해지면,
나는 하이웨이와 함께 해리를 몰고
나가 며칠씩 도로를 달리곤 한다오

나 자신에게 연민을 느끼고 싶지는 않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그리고 대부분은 그런 식으로 느끼지도 않고.
대신, 당신을 발견한 사실에
감사한 마음을 안고 살아가고 있소.

우리는 우주의 먼지 두 조각처럼
서로에게 빛을 던졌던 것 같소.

신이라고 해도 좋고, 우주자체라고 해도 좋소.
그 무엇이든 조화와 질서를 이루는
위대한 구조하에서는,
지상의 시간이 무슨 의미가 있겠소.

광대한 우주의 시간 속에서 보면
나흘이든 4억 광년이든 별 차이가 없을 거요.
그 점을 마음에 간직하고 살려고 애쓴다오.

하지만 결국, 나도 사람이오.
그리고 아무리 철학적인 이성을 끌어대도,
매일, 매순간, 당신을 원하는 마음까지 막을 수는 없소.

자비심도 없이. 시간이,
당신과 함께 보낼수 없는 시간의 통곡 소리가,
내 머리 속 깊은 곳으로 흘러들고 있소.

당신을 사랑하오.
깊이 완벽하게
그리고 언제나 그럴 것이오.


-마지막 카우보이 로버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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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때부터 이상하리만큼 한번은 꼭 보고 싶었던 영화.
남자 주인공인 랄프 파인즈가 사막을 배경으로 고개를 돌려 바라보고 있는 포스터 때문이다.
이 포스터 속 그의 눈은 뭐랄까 한단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많은 것들을 말하는것 같았다.


미련, 그리움, 원망, 쓸쓸함, 고독, 회상, 허무, 체념, 아쉬움.......


시간이 한참 지나 어느 여유로운 밤이 되어서야 이 영화를 접할 수 있었음을 오히려 감사한다.
어떤 영화를 이해하는데에는 시기가 있는것 같은데 이 영화가 개봉될 때 보다는
지금의 내가 이해하기에 더 시기적절하지 않았나 싶다.


내게이 영화는 인간이 만든 경계에 대한 영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경계란 넘지 말아야 할 선이고, 그 경계란 결국 인간이 만든 것이다.


극중 인물들은 각자의 영토(나라, 출신, 고향, 경계)가 아닌 낯선 곳의 사막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남녀 주인공 사이엔 다른 사람과 이미 결혼한...라는 경계가 있다.
하지만 영화는 그 경계를 하나씩 하나씩 부숴버린다.


전쟁으로 시작된 경계의 붕괴는,
남녀 주인공의 사랑을 계기로 결혼한 여인이라는 경계를 무너뜨리며
인도 출신 군인과 간호사(줄리엣 비노쉬)와의 짧은 사랑 역시 지역과 인종의 경계를 허물었다.


남자 주인공이 사랑하는 여자를 구하기 위해 영국군에 도움을 청하지만
독일인으로 오해를 받고 그는 결국 독인군에 배신 행위에 해당하는 지도를 건내주고 비행기를 얻어 여인이 있는 곳으로 향하며
경계의 붕괴는 극에 치닫는다.


어쩌면 감독은 인간이 만든 경계라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러한 소재는 흔한 소재였다.
다만 다른 영화들과 다른점이 있다면 터브시 되는 소재를 이용해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방법으로 말초적인 자극만을 표현했다면,
이 영화는 사막이라는 배경으로 한 편의 긴 시를 읊는듯 격정적인 사랑을 그려냈다는 점이 다를 것이다.


여자는 차가운 동굴 속에서 남자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점점 죽어간다.
그 과정에 그녀는 남자의 책에 편지를 남기고 죽었고, 남자는 뒤늦게 돌아와 그녀의 시신을 발견하며 오열한다.
그리고 병상에서 여자가 남긴 편지 내용을 들으며 죽어간다.

 

극중 여러 인물들이 모두 스토리에 녹아들어 하나도 버릴게 없는 케릭터를 보여주었지만,
그 중에서도 랄프 파인즈의 눈빛은 "카사블랑카"의 험프리 보가트의 그것과 견주어 전혀 손색없다 말할 수 있겠다.
그래서 이 포스터 속 그의 눈빛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맴돌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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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옛 사랑.

이 영화를 보며 떠오르는 두 가지가 아닐까 싶다.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역시 마지막 부분.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명장면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렸을적 상영했던 영화의 키스 장면을 신부님의 검열로 인해 짤려나갔던 장면, 

어린시절의 토토가 커텐 뒤에서 숨어서 본 그 장면을 모아 하나로 엮어 영사기로 돌려 보며 성인이 된 토토가 놀라기도

하고 다시 턱을 괴며 살며시 미소짓기도 하며 감동에 북받쳐 환한 미소를 띠우며 눈물을 글썽이는 장면.



봄이 가고 여름이 오면 어느새 가을 그리고 겨울.

그렇게 살아가면서 많은 일들을 경험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고 그렇게 많은 경험을 하며 살아간다.

시간이 흐른 뒤 그 수 많은 경험들 중 몇몇 장면은 나만에 영화가 되어 내 머리속 영사기를 통해 이따금씩 상영되곤 한다.



그러나 과거가 언제나 현실로 이어질수는 없는 것.



영화 씨네마 천국에서도 상징처럼 보여주듯 

옛 그 시절 많은 이들에게 꿈과 희망이었으며, 극장이라기 보다 그 이상의 의미가 되어버린, 

많은 이들의 머리 속 영사기의 한 부분인 극장이 철거 되는 장면

그곳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 앞에 눈물을 흘리고 그곳을 그들처럼 의미두지 않는 젊은이들은 그냥 그렇게 그 철

거 현장을 스쳐 지나가는 장면이 나는 왜그리도 슬펐을까.



많지 않은 나이지만 급격히 변모하는 이 시대를 사는 나에게도 많은 것들이 '씨네마 천국'의 그 '철거된 극장' 처럼 묻혀 버리는 것들이 있다. 점점 늘어가고 있고, 점점 빨리 사라지는듯 느껴진다.

때로는 버겁고, 때로는 향수한다.



오래전 사용했던 고물 컴퓨터.

그 속에 지금 나오는 게임에 비교하면 너무나 유치하고 원시적이던 게임에 매달려 신기해 했던 어린 날의 내 모습.

찬 바람이 뱍을 통과해서 술술 불어 오던 오래된 학교.

응답하라 시리즈에 나올법한 내게는 익숙한 소품들. 골목길..

등등등...



아직 그런 것들을 될이키며 회상에 잠기기엔 어린 나이라고 스스로 생각해 보지만... 

그래 이 영화 때문이리라.


지금 내 머리 속에서도 나만의 영사기가 돌아가는것을 느낀다.

추억이란 이름의 필름을 돌리며...








추천곡


너무나 아름다웠던 '엔리오 모리코네'의 시네마 천국 영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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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영화를 보는 동안 줄곧 비가 내렸다.

시작해서부터 끝날때까지 계속 빗소리를 들으며 영화를 봤는데

오늘은 그 빗소리에 감사해야 할것 같다.

빗소리가 있어 더욱 좋았던 영화였기 때문이다.



사실 영화보다 영화 속 삽입곡을 먼저 들었다.

예전에 한 TV 프로그램에서 우연히 들었는데 조금 오래된듯한 가락이면서도 때묻지 않은 순수하고 수수한듯한 느낌이 

들어 듣기 참 좋더라.


영화를 보면서 여러 상상을 했다.

중국연변에서 코리언 드림을 꿈구며 한국에 온 젊은 두 남여.

혹은 미국, 일본으로 각자의 꿈을 꾸며 떠난 한국의 두 남여.

그 외에 여러 상황이 있겠지. 

암튼 이 영화 속 두 주인공의 상황은 그렇게 얼마든지 만들어지고 있을 것이라는 그런 상상.



사랑...

그(여명)에겐 고향에 두고 온 애인이 있었다.

그리고 친구로 지내는 이 여인(장만옥)은 그를 이용하고 있었을 뿐이지만 그는 친구라는 이름으로 그녀를 진실로 대하고 

그 진실에 그녀 역시 그를 진실로 대하게 된다. 

진실과 진실은 사랑을 싹티웠고 그들이 처한 비슷한 환경은 그들에게 정이 뿌리 내리도록 했다. 

그 정이 사랑을 뿌리로 한 것임을 모르는체 그들은 그 사랑의 뿌리를 가슴 속 깊히 담고서 헤어지게 된다.

그들이 헤어지기 전,

그 둘 모두 중국 한 여가수를 좋아했는데 비록 실패했지만 그 가수의 음반 판매업을 한적이 있다. 

그들에게 그 가수나 음악들은 어떤 의미일까. 

둘을 하나로 묶어주는 매개..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기억 속에 남아 다시 이어줄 수 있는...



우리 주변에는 사랑하면서도 서로 함께있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서로 떨어져 있어도 늘 서로를 그리며 그리워하겠지. 그 그리움은 지구 반대편에 있어도, 지구 밖에 있어도, 

이 세상을 떠나버려도...



결국 그 둘은 그 가수의 사망 소식을 알리는 거리 전자대리점의 진열대 속 TV를 바라보다 만나게 된다. 

중국도 홍콩도 아닌 미국에서...

그들이 만나지 못했다면 더욱 완벽한 영화가 되었겠지만 만날 수 있어서 무척 기뻤다. 

모순되는 말이지만...


영화 완성도 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그냥 영화를 보고 행복해지고 싶을 때도 있는 것이다.






[추천곡]


등녀군 : 첨밀밀 / 월양아적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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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를 보고...



해리 코닉 주니어의 영화 음악이 무척 좋았던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하지만 영화 음악 보다도 더 좋았던건 영화다.



12년간이라는 오랜 세월을 두고 만남과 이별, 그리고

재회를 거듭하며 우여곡절 끝에 우정을 바탕으로 참된 사랑을 찾은 두 남녀.



(진정한 의미의) 새로운 만남에 설레이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이별에 가슴 아프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사람들은 만남과 이별을 반복해 가면서 때로는 설레어하고 때로는 가슴 아파한다.

그 속에서 어떤 이들은 힘들어하고 또 어떤 이들은 힘들어도 힘들지 않는듯 한다.

그리고 또다시 마음을 여는것을, 또다시 믿는 것을 두려워 한다.

다시 아파질까 두려워하며...



씁쓸하지만, 그러면서 시간도 흘러가고 나이도 들어간다.



새로운 만남을 시작도 하기 전에 올지 않올지 모르는 이별을 미리 두려워하는건

분명 어리석은 짓일 것이다.

혹자는 말한다.

이별을 두려워하는게 아니라 신중하려는 것 뿐이라고...



그래서 사람들은 많은 시간을 겉도는데에 허비한다.

영화 속 해리도 샐리도 12년이란 긴 시간을 겉돌고 만다.

그리고 그 12년의 끝에 선 해리가 비로서 사랑이었지만 사랑인줄 몰랐던 사랑을

샐리에게 고백한다.


고백을 받은 샐리와 해리의 대화를 옮겨본다.



Sally : 미안하지만 해리, 송년의 밤이고, 외롭다는 거 잘 알아.

        하지만 갑자기 나타나서는 사랑한단 말을 한다고 해서

        모든 일이 해결되는 건 아냐.. 이런 식으론 안돼.


Hally : 그럼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Sally : 몰라...하지만 이런 식으론 안돼.


Hally : 그럼 이런 건 어때? 더운 날씨에도 감기에 걸리고,

        샌드위치 하나 주문하는데 한시간도 더 걸리는

        널 사랑해. 날 바보 취급하며 처다볼 때 콧가에

        작은 주름이 생기는 네 모습과 너와 헤어져서

        돌아올 때 내 옷에 뭍은 네 향수 냄새를 사랑해.

        내가 잠들기 전에 마지막으로 이야기 하고 싶은

        사람이 바로 너이기에 널 사랑해.

        지금이 송년이고 내가 외로워서 이런 말 하는게 아냐.

        네 인생을 누군가와 함께 보내고 싶다면,

        가능한 한 빨리 시작하란 말을 해주고 싶어.


Sally : 이것봐, 넌 항상 이런 식이야 해리!

        도저히 널 미워할 수 없게끔 말하잖아.

        그래서 난 네가 미워 헤리...네가 밉다구...


그리고 둘은 서로의 눈빛을 얼마간 바라보며 달콤하고 긴 키스를 나눈다.

제야의 종소리와 함께......



이 영화는 아주 오래동안 내 가슴에 기억될 것이다.

샐리가 식당에서 오르가슴을 연출했던 장면도,

해리 코닉 주니어의 영화 음악도,

죠의 결혼 소식에 울먹이는 샐리를 위로하다 친구 관계를 넘은 장면이 아닌

송년의 밤, 비로서 샐리에게 자기의 마음을 고백하는 해리의 저 모습으로......


몇년이 지난 뒤 우연히라도 이 영화 제목을 보게 된다면, 

꼭 이 영화를 다시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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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트 이스트우드.

마카로니 웨스트 무비를 열었던 카리스마 넘치는 터프함의 극치.

그의 까칠한 수염과 인상을 쓸때 눈가의 주름, 씨거를 깨무는 모습 등은

요즘 귀공자들처럼 생긴 이른바 얼짱들의 별칭처럼 말도 안되는

"귀여운 터프가이" "다정한 터프가이" "로맨틱한 터프가이" 등등

온갖 잡스런 터프가이가 아닌 말 그대로

"터프" ---- "터프가이"인 것이다.



위에 나열한 잡스런 수식어가 붙은 터프가이들에게 그다지 반감은 없지만

그런 쓰레기 같은 미사어구로 "터프가이"의 의미를 호도할때는 속이 뒤집힌다.



그렇다고 "터프가이"를 영웅시 할 생각은 없다.

"터프"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무법의, 맹령한, 거친, 악한, 깡패, 부랑자..

등의 의미를 내포하기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난 어려서부터 "터프가이"를 동경한다.

그건 아마 나를 비롯한 전세계 남성들의 내부에 존재하는 남성성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합법적인 이 시스템 같은 세상 속에서 체제를 따르며 성장해 왔고 법을

지키며 길들여져 왔지만 그들 내부의 야성은 "터프"라는 단어의 본능이 깊히 자리하며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터프함"의 "터프가이"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표본적인 존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는 그 터프함의 끝자락을 보여준다.

왕년의 흉악한 무법자는 이젠 늙고 쇠약해진데다 이전의 용맹함마져 잃어버렸다.

눈하나 까딱하지 않고 사람을 죽여왔던 그와 그의 동료(모건 프리맨)은

이제 사람을 향해 총을 겨누며 방아쇠를 당기기 보다 먼저 자신의 쿵쾅거리는

심장을 진정시켜야 할 만큼 마음까지 약해져버렸다.

역설적이지만 그런 그들의 모습은 인간 생명의 고귀함을 보여주는듯 했다.



하지만 이 늙은 무법자는 동료의 죽음으로 위스키 반병과 함께 묻어두었던 본능을

끄집어 낸다. 그의 응징은 다른 액션영화에서처럼 화려하지도 시원시원함도 주지

않지만 너무나 처절했고 너무나도 나로하여금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 제작 감독의 이 영화는

어쩌면 자신의 젊은날의 반성 혹은 인간애 그리고 젊은이들을 향한 충고 같았다.



오래도록 이 영화를 보고 싶어했는데 비로서 오늘 인연이 되어 엔딩까지 보게

되었는데 다시한번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터프함"에 반하고 말았다.



숀코네리의 귀족적 노인보다 더 비틀거리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성깔 있는 노인의

모습이 내겐 아주 오래도록 여운으로 남을것 같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그가 보여주었던 "터프함"을 완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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