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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 람 이 어 라 Silk R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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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트 이스트우드.

마카로니 웨스트 무비를 열었던 카리스마 넘치는 터프함의 극치.

그의 까칠한 수염과 인상을 쓸때 눈가의 주름, 씨거를 깨무는 모습 등은

요즘 귀공자들처럼 생긴 이른바 얼짱들의 별칭처럼 말도 안되는

"귀여운 터프가이" "다정한 터프가이" "로맨틱한 터프가이" 등등

온갖 잡스런 터프가이가 아닌 말 그대로

"터프" ---- "터프가이"인 것이다.



위에 나열한 잡스런 수식어가 붙은 터프가이들에게 그다지 반감은 없지만

그런 쓰레기 같은 미사어구로 "터프가이"의 의미를 호도할때는 속이 뒤집힌다.



그렇다고 "터프가이"를 영웅시 할 생각은 없다.

"터프"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무법의, 맹령한, 거친, 악한, 깡패, 부랑자..

등의 의미를 내포하기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난 어려서부터 "터프가이"를 동경한다.

그건 아마 나를 비롯한 전세계 남성들의 내부에 존재하는 남성성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합법적인 이 시스템 같은 세상 속에서 체제를 따르며 성장해 왔고 법을

지키며 길들여져 왔지만 그들 내부의 야성은 "터프"라는 단어의 본능이 깊히 자리하며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터프함"의 "터프가이"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표본적인 존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는 그 터프함의 끝자락을 보여준다.

왕년의 흉악한 무법자는 이젠 늙고 쇠약해진데다 이전의 용맹함마져 잃어버렸다.

눈하나 까딱하지 않고 사람을 죽여왔던 그와 그의 동료(모건 프리맨)은

이제 사람을 향해 총을 겨누며 방아쇠를 당기기 보다 먼저 자신의 쿵쾅거리는

심장을 진정시켜야 할 만큼 마음까지 약해져버렸다.

역설적이지만 그런 그들의 모습은 인간 생명의 고귀함을 보여주는듯 했다.



하지만 이 늙은 무법자는 동료의 죽음으로 위스키 반병과 함께 묻어두었던 본능을

끄집어 낸다. 그의 응징은 다른 액션영화에서처럼 화려하지도 시원시원함도 주지

않지만 너무나 처절했고 너무나도 나로하여금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 제작 감독의 이 영화는

어쩌면 자신의 젊은날의 반성 혹은 인간애 그리고 젊은이들을 향한 충고 같았다.



오래도록 이 영화를 보고 싶어했는데 비로서 오늘 인연이 되어 엔딩까지 보게

되었는데 다시한번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터프함"에 반하고 말았다.



숀코네리의 귀족적 노인보다 더 비틀거리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성깔 있는 노인의

모습이 내겐 아주 오래도록 여운으로 남을것 같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그가 보여주었던 "터프함"을 완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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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lk R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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