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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아트리체 첸치 -귀도 레니 作 

 

 

이 작품을 처음 접한 분이라면 이 작품에 관한 이야기는 뒤로하고,

일단 감상해보길 권한다.

 

그림 속 인물의 표정이 어떤 느낌인지,

전체적으로 작품에서 느껴지는 느낌이 어떠한지...

 

 

그림 속 인물의 이름은 "베아트리체 첸치"

16세기 이탈리아의 귀족 여성이다. 그녀는 로마에서 일어난 끔찍한 살인 사건 공판의 주인공이다

 

그녀는 프란체스코 첸치의 딸로,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프란체스코 첸치는 아내와 아들들을 학대하였으며, 딸인 베아트리체를 강간했다고 한다.

당시 그녀의 나이 14세.

 

그녀의 아버지 프란체스코는 다른 죄목으로 투옥되었으나, 얼마 안 가 귀족이라는 이유로 정상참작이 되어 풀려났다.

베아트리체는 당국에 아버지의 상습적인 학대를 신고해 보았고, 비록 모든 로마 사람들이 그녀의 아버지가 어떤 인물인지 알고 있었지만,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이후 딸이 프란체스코 자신을 신고했다는 사실을 알고, 그녀를 로마에서 내쫓아 지방에 소유하고 있는 성에 가둬 놓았다.

 

베아트리체 그리고 그녀를 동정했던 계모와 친오빠, 이복남동생은 프란체스코에게 복수하고 말겠다고 결심,

그녀의 형제 그리고 의뭇 어머니와 함께 결국 프란체스코를 살해한다.

 

프란체스코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아챈 교황의 경찰들은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려고 애썼다.

체포된 베아트리체의 연인은 고문을 받아 죽을 때까지 이실직고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결국 음모가 밝혀졌고,

베아트리체를 비롯한 첸치 가문의 가담자 전원이 체포되었으며, 유죄로 인정되어 사형 판결을 받았다.

로마의 일반 시민들은 정당방위를 주장하며 법원의 결정에 항의했으며, 결국 사형 집행은 계속 미루어졌다.

하지만 교황 클레멘스 8세는 일말의 자비심도 보이지 않았고,

마침내 1599년 9월 11일 새벽녘에 산탄젤로 다리로 끌려나와 사형대에서 처형되게 된다.

 

당시 그녀의 나이 16세.

 

 
처형 당일 그녀를 보겠다며 이탈리아의 구경꾼들이 모였으며,
이 그림을 그린 화가,귀도 레니 또한 그 중 한 사람이었다.
 

죽음을 앞 둔 가련한 소녀의 덧없는 표정.
금방이라도 눈물이 흐를것 같지만 눈물도 매말른체 허탈함과 허무함이 느껴지는 표정.


 
귀도 레니는 단두대로 오르기 직전의 베아트리체를 화폭에 담았는데,
후에 <적과 흑>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작가 스탕달은 그 그림을 보고  심장이 뛰고 무릎에 힘이 빠지는 이상한 경험을 했으며,
이 그림을 보고 한 눈에 반해 그녀를 주인공으로 한 '첸치 일가족' 이란 글을 썼다.
스탕달은 이 같은 증상을 치료하는데 1개월 이상 걸렸는데,
Elevated Mental Disease라고 불리는 이 병은 뛰어난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느끼는 순간적인 압박감, 정신적인 충격을 일컫으며,  스탕달 신드롬(Stendhal Syndrome)’이라고 하는데 귀도 레니의 '베아트리체 첸치'는 이 말의 유래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me too"운동이 세계적으로 번지고 있는 이 때,

문득 이 작품이 떠오르는 것은 우연일까.

 

 

지금도,

세상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저 그림 속 표정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강간 피해자의 옷’ 전시회

http://m.kmib.co.kr/view.asp?arcid=0012056435&code=61121111&sid1=kan

 

위 전시회의 목적은 성범죄의 원인 중 하나로 종종 지목되는, 피해자가 야한 옷을 입었다라는 말이 옳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전시회라고 한다.

 

저 전시된 옷 중,

어린 아이의 옷이 나로하여금 가슴을 아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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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년 7월 14일 - 1918년 2월 6일

미술이 격동하던 19세기 말에 장식 회화가로 교육받았으나 곧 건축 장식회화에서 탈피하여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게 된다. 젊은 시절에는 사실적인 회화에도 능하였으나 점점 더 평면적이지만 장식적이고 구성적인 방향으로 나아갔으며, 화풍 뿐만 아니라 대학 회화라고 불리우는 일련의 문제작들에서 특유의 반항적/회의적 주제의식을 보여줘 큰 비난과 함께 명성을 얻은 바 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 모더니즘 계열의 미술이 빠르게 기존 회화 경향을 대체하였고, 클림트의 이후의 작가들은 더 이상 클림트와 같은 그림을 그리지 않게 된다. 너무나도 유명하지만, 그 이전의 전통과도 다르면서 훗날의 미술과도 다른 고립된 섬과 같은 위치에 있는 작가.

 

14살 때인 1876년에 빈 응용미술학교에 입학한 이후 장식 회화가로 교육받았다. 1883년에 졸업하고 동생 에른스트 클림트, 동료인 프란츠 마치와 함께 공방을 세우고, 이후 건축물 벽면의 회화 작품 등을 제작한다. 이 당시만 하더라도 지극히 전통적인 사실적 화풍을 보여주었다. 이후 초상화나 우의화 등 장식과 독립된 작품 활동을 하면서 점점 자신만의 화풍을 발전시키게 된다.

 

19세기 말에 영국, 프랑스 등에서 벌어진 인상파와 같은 진보된 아방가르드 미술 운동들을 접하게 되고, 상대적으로 낙후된 오스트리아의 미술 경향과 미술 협회의 보수성에 반발하게 된다. 이후 반 아카데미즘 운동을 하면서 1897년 빈 분리파(제체시온;Secession)를 결성하고 아르누보 미술의 거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이후 구스타프 클림트는 결별했던 동료인 마치와 함께 빈 대학교 대강당의 천장의 패널화를 의뢰받게 되는데, 그가 의뢰받은 부분은 대학의 철학, 의학, 법학을 상징하는 부분이었다. 클림트가 그린 3점의 대학 회화는 화풍 역시 기존 건축물의 패널화와 달랐지만, 그 그림이 담고 있는 주제 때문에 관계자들을 격분시켰다. 마치 인간이 우주의 이치를 알기에는 너무나 미약한 존재이며, 인간은 삶에서 죽음을 피할 수 없고, 정의보다는 고통과 무질서가 더 가까이 있는 것처럼 해석되는 그림들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클림트의 학력을 문제삼으며 그에게 너무 벅찬 주제라는 비난이나, 빈 대학교의 교수진 87명이 철학을 반대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으며, 반대로 당시 교육부 장관이 클림트를 옹호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키스>

 

 

 <유디트>

 

<유디트 II (살로메)>

개인적으로 크림트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고, 제일 먼저 접한 작품이다.

 

<다나에>

<성취>

 

<사랑>

 

클림트의 작품들 중 내게 의미있는 작품들이다.

작품에 빠져든다고 할까...

감상하는 중에 많은 것들을 생각나게 한다.

 

잊혀진 것,

잊고싶은 것,

희미해진 것

 

조용한 곳에서 오랫동안 들여다보며 그 생각들을 되새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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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dy Godiva (레이디 고다이버)' (존 콜리어 John Collier) 1898년작

 

그녀(고다이버)는 본래 11세기 영국 코벤트리 지방의 영주이던 리어프릭의 아내였는데, 남편 리어프릭은 당시 자신의 영지 하에 있던 농민들에게서 혹독하게 세금을 걷는 등 가혹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었는데,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그녀는 남편의 정책 때문에 나날이 죽어가는 농민들을 불쌍하게 여겨 세금을 줄여 달라고 탄원하였다.

 

그러나 리어프릭은 고다이바의 의견을 철저히 무시한 채 여전히 농민들을 탄압하였다. 고다이바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간청하자 그는 "만약 네가 나체로 말을 타고 나의 영지를 한바퀴 돈다면 세금 감면을 고려하겠다." 라고 말하였다. 당시 고다이바의 나이가 겨우 16세 정도였던 것을 고려하면 절대 실행하지 못할 것이라 여기고 한 말이었다. 알몸으로 16세의 여성이 마을 한 바퀴를 도는 건 현대의 관점에서도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고다이바는 고민 끝에 농민들을 구하기 위해서 자신의 한 몸을 희생하기로 결심한다. 날이 밝자 그녀는 정말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머리카락으로만 몸을 가린 채 말을 타고 영지를 돌아다녔다. 그러나 지체 높은 영주의 부인이 자기들을 위해서 그렇게까지 한다는 것을 알고 감동한 영지의 농민들은 그녀가 출발하는 날이 되자 전부 집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걸어 잠그고 커튼을 친 채, 무거운 정적 속에서 얼른 시위가 끝나기를 기도하였다.

 

그런데 이 와중에 톰이라는 양복점 직원이 본능을 이겨내지 못하고 몰래 훔쳐봤는데, 훔쳐보는 순간 장님이 되었다고 한다. 결국 고다이바는 세금을 감면하는 데 성공하였고 남편은 아내의 행동에 감화되어 선정을 폈으며 농민들은 그녀의 희생 정신에 감동해 고다이바를 추앙하게 된다. 지금도 코벤트리 마을의 로고는 말을 탄 여인의 형상을 하고 있고, 관련 상품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정치인의 덕목을 저 그림 속에서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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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tation (Eugene Carriere) 

일본 오카야마 구라시키에 가면 오-하라 미술관이 있다.

시골 마을 미술관이지만 피카소를 비롯 뭉크, 모네 등 유명 화가들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개인적인 이유로 오카야마에 종종 들르는데 여건이 허락되면 이 미술관을 들러 작품을 감상하곤 한다.

근래 이곳에 갔을 때 이전에 갔을 때와는 다른 작품들이 전시 되어있었는데

그 중 유난히 눈길을 끈 작품이 바로 이 그림이다. 

한동안 멈춰서서 우두커니 이 그림에 빠져들었다.

비내리는 저녁무렵 흐릿한 조명을 받고 있는 이 작품에 왜 눈길이 잡히게 되었었을까.

동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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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묘(猫)자는 한자로 칠십 노인 모(耄)자와 ‘마오’라는 중국 발음이 같고,

70을 뜻하는 고양이가 80을 뜻하는 나비를 보고 있으니 이는 장수를 기원하는 그림이 아닐겠는가.

옛사람들의 그런 깊은 뜻을 알고 보면 그러한 의미가 담긴 작품이겠지만,

내게 이 작품은 뭐랄까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작품으로서 좋아한다.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어린시절 시골에서 무료한 한 때를 보낼 때 우연히 마당에서 노니는 고양이와 나비를 보며 잠시

흥미롭고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순간을 연상케한다.

 

 

평온이 필요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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