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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었고,

가장 무서운 장면이었으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이전과 사뭇 달라지게 된 계기가 된 장면.

 

 

 

 

이제부터의 얘기는 모두 1급 비밀입니다
난 군인이었어요
국방성의 비밀요원으로 전세계에서 흑색작전을 했소
암살, 쿠데타, 선거조작, 선동, 심리전 2차대전 말 동구에서는 나찌 정보원을 구해내서
공산당과 싸웠고 48년 이태리 선거조작, 49년 프랑스 노동운동, 필리핀, 과테말라, 이란
54년 베트남 정권교체, 58년엔 인도네시아, 59년엔 티벳 달라이 라마도 빼냈고,
솜씨가 아주 좋았죠.

그런데 쿠바에서 망쳤소
62년 10월 침공 준비하다 소련과 협상으로 취소돼 할 일이 없어지자 몇 사람이 화가 났죠
그 얘기는 나중에 하고

난 1963년
9월 한달 내내 케네디 명령으로 월남철수를 계획했소
백악관의 안보메모 263호는 제1진의 성탄절 철수명령이오
그런데 11월 암살사건 나기 2주 전에 이상한 일이 생겼죠

(상관의 갑작스런 명령으로 남극에 보내지고)
Y 장군이 날 남극에 보낸 일은 몇 VIP의 경호였소
돌아오다 뉴질랜드에서 암살 소식을 들었죠
오스왈드는 7시에 구속됐는데
뉴질랜드 신문은 오스왈드에 대해 자세히 보도했소
사진, 자세한 경력 그가 틀림없이 범인이라고, 정식구속 4시간 전인데 말이오!
이건 틀림없는 위장전술이고 우리의 전문 수법이죠

돌아온 뒤에 왜 하필 나를 남극으로 보냈을까를 생각했소
내가 아마 미국에 있었다면 그날 나는 경호를 맡았을 거요
이상하게도 그날 112경호 팀에겐 대기명령이 떨어졌었소
통상적인 경우 댈러스같이 험악한 곳은 당연히 방탄차를 타고 길에는 무수한 요원이 깔리죠
불과 몇 달 전 유엔대사가 피습 당했고 드골 암살시도가 있었어요
사전에 건물을 철저히 조사하고 창문은 절대 못 열게 합니다
위험한 곳에는 우리 저격수들 배치하고 군중들 소지품을 조사하고 우산 같은 건 펴지 못하게 하죠
차량은 빠르게 이동하고 커브 코스는 피하고 당연히 군대도 배치하는데 그날은 그런 게 전혀 없었소
치밀한 각본이 준비됐던 거지
그걸 누가 했느냐?
바로 나같은 사람들이오

내 상관이 112경호 팀에게 대기명령을 내렸겠지
다른 요원들이 댈러스에 간 것은 틀림없지만 경호를 위해 간 건 아니었소
국방성의 오스왈드 기록도 전부 파기되었고 또 이상한 게 많았지
내각은 전부 극동에 나갔었고 독일에선 전투연대 병력이 들어오고 있었소
암살시각에 워싱턴 전화는 1시간 동안 불통이었소
상황실에서는 존슨에게 '단독범'이란 전문을 보냈소
그게 우연일까요?

- 아니오
- 절대 아니죠

내각을 미리 피신 시키고 폭동진압 병력 불러들이고 전화를 끊어 연락 차단하고.
완벽해요
빈틈이 없었소

그 뒤로 다 변했죠
월남전이 시작되고 국방성, CIA는 신임 얻고 워렌보고서는 더러운 내용을 다 숨긴 거요
난 워렌을 잘 알아요
케네디한테 쫓겨난 이가 암살사건 조사를 맡다니 그는 우리의 자문이오
난 64년에 제대를 했소

케네디가 그렇게 위험했나요?
죽여야 할 정도로?

문제는 '왜?'죠
'누가, 어떻게'는 별거 아니에요

오스왈드, 루비, 쿠바, 마피아 누구냐를 따지느라고 더 중요한 걸 잊고 있소
왜 죽였고? 누가 이익이고?
누가 은폐할 수 있죠?

1961년
피그만 사태 직후에 안보메모 55호는 최고 비밀인데
케네디는 국방성에서 비밀작전도 맡도록 했소
CIA를 없애려고 군대의 힘을 쓰려던 것이죠
그건 큰 충격이었고 곧 워렌 국장과 CIA 간부들이 파면됐소
이들이 거느리던 많은 사람들도 보수권력층이 케네디의 적이 된 거요

그 결과로 우리 부서에 몽구스 작전이 넘겨졌소
그 작전은 쿠바를 치려던 비밀작전이었죠
쿠바 난민을 이용해서 말이오
수억 불 예산에 요원 3백 명, 쿠바인 7천 명

50개의 위장업체로 카스트로와 싸우는 거지
산업테러와 곡물방화 Y 장군 지휘였소
이 흑색작전이 다 준비됐다가 막판에 중단됐소
예산도 깎여서 CIA 지부 73개를 없앴죠
문제는 돈이오

월남에서만 헬기가 3천대나 소모됐는데 벨 헬기회사가 누구 소유요?
파산직전에 CIA가 살려낸 거지
F-111 전폭기는?
제너럴 다이나믹스는 누구 소유죠?
49년에 1백억 불이던 국방예산이 현재는 1천억 월남전에만 2천억이 들 거요
전쟁은 돈이고,
그런 이권이 권력과 연결됐는데 케네디는 냉전을 끝내고 우주경쟁도 핵무기도 다 폐기하려 했소
쿠바를 포기하고 월남에서도 철수하려다 결국 암살당한 거지
월남전을 꺼릴 때부터 적이 생겼고 적은 소리없이 뭔가를 시작하고 있었소


케네디가 위원 모가지를 여럿 날리고 합참의장을 똥을 만들었지
가까운 쿠바에도 안 갔는데 먼 월남에는 왜 가냐 이거죠
 

1천억 불 예산은 큰 돈인데 케네디는 제멋대로 방위산업을 줄인 거요
그러니 큰 일이 난 거죠


월남전 정보를 잘 통제해요
월남 얘기만 나오면 합참의장도 겁을 낸다니까
앞으로 밤이건 낮이건 맥스가 감시하고 당신은 케네디를 맡아요
그렇게 시작됐고
결국은 Y 장군에게 연락했겠죠

실행합시다
언제요?
가을쯤! 남부에서 계획을 만들어 봐요
준비하죠


아무도 암살 얘기를 안 했고 책임도 안지는 교묘한 처형이죠
총살 때 공포탄 한 발 섞으면사수는 모두 죄의식이 없죠
아무도 자기 탓을 안 하니까
문제는 성공이오
어떻게든 성공만 하면 다 끝나 버리는 쿠데타니까!

텍사스 방문이 발표된 9월에는 계획에 따라 작전이 진행되고 있었죠

암살 팀은 특수훈련소나 프로 팀일 수도 있소
누가 쏘느냐? 그건 상관 없죠

아시겠지만
11월 26일 케네디 장례식 다음 날
아시아를 그대로 포기할 수 없소
우리는 월남에 개입합니다
안보메모 273호는 케네디의 철수계획을 취소하고 월남전에 개입한다는 것이고 이로 인해 통킹만 사태가 발생하죠
전쟁할 테니 날 재선 시켜!


그리고는
전쟁을 한 거요!
그 때문에 대통령을?
이 시대? 이 나라에서?
왕들도 많이 죽었소
도저히 못 믿겠소?
엄청난 문제군요
증언하겠소?
- 내가?
- 증언해요
절대 안 돼요
정신병원 아니면 죽게 될 거요
이제 배경을 알았으니 앞으로 나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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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lk R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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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 중 2명의 대통령이 암살당했었다.

링컨과 케네디

그 중 케네디는 그리 멀지 않은 역사 속 인물이고, 그의 죽음과 관련하여 석연찮은 의혹들이 많았다고 들었기에 관련 내용을 담은 영화 JFK는 개봉 전부터 꼭 보고 싶은 영화였다.

영화 속에는 대중들에게 공개되지 않은 선명한 화질의 저격 당시 영상이 영화 속 마지막 재판 과정에서 공개되는데 검사의 설명과 함께 그 장면이 곁들여지는데 그 부분이 클라이막스가 아닐까 싶다.

 

미국 대통령이 공개적인 장소에서 저격에 의해 암살당하고,

범인은 단독범으로 오스왈드 라는 사람이 지목되는데, 극장에서 영화보고 있다가 체포되고,

경찰들에 의해 이동 중인 용의자 오스왈드는 잭 루비(나이트 클럽 운영자) 라는 사내에게 또 총을 맞아 죽는다.

그런데 그 잭 루비 역시 감옥에서 의문사 한다.

그 후 10개월 후 대통령 암살 사건을 조사한 워런 위원회는 오스왈드의 단독범행으로 결론지으며 보고서를 내는데 그 보고서가 바로 워런보고서다.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고, 상당수 미국인들이 신뢰하지 못한다고 한다.

 

 

누가봐도 저 일련의 과정은 미심쩍은 부분이 많다.

 

세상에 어떤 사건이 발생하고, 그 사건이 복잡하고 진실을 밝히기 어려울 때는 간단한 이치로 돌아가야 한다고 본다.

 

1. 그 사건으로 인해 누가 가장 이득을 보게 되었는가.

2. 더불어 그 전까지 손해를 보았던 쪽, 불만이 많았던 쪽은 누구였던가.

 

JFK 영화를 다 보고나면, 대통령 암살의 진범이 누구일지 궁금해진다.

그러려면 당시 케네디 전후를 둘러싼 배경지식이 필요한데, 그에 도움을 줄만한 영화가 Thirteen Days (D-13)이라는 영화다.

 

 

<미국 대통령>

34대  아이젠하워

35대  케네디

36대  존슨

37대  닉슨

 

영화 Thirteen Days (D-13) 는,

미국와 쿠바 그리고 소련(지금의 러시아)와의 긴장감 넘치는 외교 이야기를 담고 있는 상당히 흥미로운 영화다.

어쩌면 세계3차대전이 일어났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외교적 역량이 빛나지 않았나 싶지만,

JFK영화를 보면 당시 미국 내에서 케네디의 그러한 행보에 대해 매우 못마땅해하는 보수세력이 존재했었던것 같다.

 

관련 내용을 검색해서 찾아보니 이런 글이 보였다.

케네디 행정부의 첫번째 외교정책은 대실패였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임기말년에 미국 CIA는 쿠바 침공을 위해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쿠바 망명자들을 조직하여 무장시키고 훈련시켰다. 미국합동참모부는 신임 대통령인 케네디에게 이 병력이 일단 쿠바 해안에 상륙하면 쿠바의 지도자인 피델 카스트로에 대한 총궐기를 촉발시킬 것이라고 일치된 견해를 제시했다. 그러나 피그스 만 침공은 대실패로 끝났다. 쿠바 해안에 상륙한 특공대는 사살되거나 사로잡혔다. 케네디는 이 실패에 대하여 '단독책임'을 졌다. 그는 사석에서 아버지에게 합동참모부의 추천사항을 사전 검토 없이 그대로 수락하는 일은 다시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소련의 총리인 흐루시초프는 1961년 6월 빈에서 케네디와 만나고 나서 이 젊은 대통령의 그릇을 정확히 파악했다고 생각했다. 흐루시초프는 동·서 베를린 사이에 장벽을 건축하라고 지시하고 동독과 단독으로 평화협정을 체결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케네디 대통령은 방위군과 예비군에게 동원령을 내렸고 흐루시초프는 단독평화협정 위협을 취소했다.

 

(여기서부터가 영화 D-13의 스토리와 관련)

1962년 10월 소련제 중단거리 핵 미사일이 쿠바에 배치되고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케네디는 그 미사일들을 철거하라고 요구했다. 그는 쿠바를 고립시키라고 명령했고 실제로 소련군함이 쿠바에 도착하지 못하도록 해상봉쇄 조치를 취했다. 13일 동안 핵전쟁이 임박한 듯한 분위기였다. 그 뒤 소련의 총리인 흐루시초프가 공격용 무기는 철수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10개월 뒤 케네디는 흐루시초프와 영국 총리 해럴드 맥밀런이 참가한 가운데 핵실험금지조약에 서명했는데 이것은 커다란 외교적 개가였다. 1960년 대통령선거에서 가까스로 이겼기 때문에 케네디는 의회접근에 조심성을 보였는데 또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의회는 대체로 케네디가 제안한 법안들에 대해 별 흥미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회는 중남미 국가와의 '진보동맹'(Alianza)과 수천 명의 대학생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은 '평화봉사단'(Peace Corps)을 승인했으나 그가 크게 관심을 기울였던 2개의 법안, 즉 대규모 소득세 삭감과 포괄적인 민권보호조치에는 냉담했다. 결국 이 안건은 그의 사후에 통과되었다.

 

 

쿠바 사태

베트남 전쟁

소련과의 냉전

이러한 와중에서 그는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였는데, 미국 같은 큰 나라의 대통령이 백주대낮에 저격당해 죽었는데 그 배후가 명쾌하게 밝혀지지도 않은체 지금껏 시간이 흘러왔다는 부분에 있어 이 두 편의 영화는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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