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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동탄신도시 '뽀로로파크'에서 자신이 탄생시킨 뽀로로를 만나 반가워하는 최상현 디자이너


■'뽀로로 아빠'를 소개합니다

동래중학교를 거쳐 내성고등학교에 진학한 그는 비로소 '미술'에 눈을 뜬다. 1학년 때 실력을 눈여겨본 미술선생님이 디자인을 전공해 보길 제안한 것이다. 삼 형제 중 장남이었던 그는 이거다 싶어 용기를 냈지만, 집안의 엄청난 반대에 직면한다. 얼마 전까지 그의 목표는 '공군사관학교'였다. 어쨌든 역경을 딛고 1993년 동의대 산업디자인학과에 입학해 디자이너로서 첫발을 뗀다.


2000년 10월. 졸업반이던 그는 세 회사에 지원할 기회를 얻는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제조업체 두 곳. 그리고 오콘(OCON)이다. 두 회사가 전공인 제품디자인에 적합한 안정적인 직장이라면, 오콘은 위험 부담이 큰 애니메이션 업체였다.


최상현은 급여도 절반에 불과한 오콘을 선택한다.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재미있고 좋아서'다. 당시 SBS인기가요에 등장한 춤추는 캐릭터 '룰루랄라'를 보고 '정말 재미있겠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주변에선 "미쳤다!"고 했다. 10년 세월이 흐른 지금, 대학 은사님은 그를 자신의 '5대 제자'에 포함시켰다.


■뽀로로는 2등신!

오콘에 입사한 그는 밤낮없이 일했다. '지방대 출신'에 경력 없는 그로선 쟁쟁한 동료, 선배들을 이기는 길은 노력뿐이었다. 그러던 중 2002년 '디자인연구소'에 합류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비밀 작업이 진행되던 그곳에는 PD나 작가뿐 아니라 프랑스인 디자이너와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박사급 디자이너가 이미 자리 잡고 있었다. 임무는 '겨울에 사는 동물들을 주제로 5분짜리 52부작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 전쟁이 시작됐다.

'뽀로로 개발팀'(사실 당시에는 뽀로로란 이름도 없었다)에 합류하고서, 주말이면 동물원에 눌러앉았다. 펭귄과 다른 동물들의 움직임, 그걸 구경하는 아이들 표정을 수도 없이 들여다봤다. 그렇게 탄생한 스케치는 족히 수천 장이 됐고, 세상 빛을 보지 못한 펭귄 캐릭터도 부지기수였다.

마침내 파일럿 모자에 고글을 쓴, 머리가 엄청 큰 꼬마 펭귄이 선배들 작품과 나란히 경쟁했다. 기적이 일어났다. 회사의 선택은 신참 디자이너 최상현의 것이었다. 주인공이 정해졌으니 나머지 친구들 캐릭터는 물론 장난감과 집이며 나무며 각종 배경까지 모두 다 그의 몫이 됐다.

뽀로로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대부분 2등신(정확히는 1.9등신)이다. 머리와 몸이 딱 반반이라는 얘기다. 아이들은 머리 큰 것들이 펭귄처럼 뒤뚱뒤뚱 걷는 걸 그렇게 좋아했다. 자기를 닮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2003년, 여러 동료들과 함께 1년이 넘게 작업한 뽀로로가 처음 전파를 탔다. 첫 방송이 끝나고 자막에 등장한 이름 '디자이너 최상현'. 다 큰 어른이 사무실에서 몰래 울었다. 그 뒤로 뽀로로는 2005년부터 4년간 국내 애니메이션 시청률 1위를 기록했고, 110개국에 수출돼 '월드스타'가 됐다. 



[Q & A]

- 캐릭터 디자이너란 게 좀 생소하다.

▶ 영화는 배우를 캐스팅하면 된다. 애니메이션은 만들어진 배우가 없다. 직접 디자이너가 배우를 만들어야 한다. 외형을 만들어 성격을 심고 배경도 그린다. 캐릭터는 그림만 쓱쓱 잘 그려서 되는 게 아니라 이야기가 담겨야 한다. 캐릭터를 딱 봤을 때 이야기가 묻어나도록 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 뽀로로 캐릭터가 선택됐을 때 기분이 어땠나.

▶ 그때는 잘 몰랐다. 기쁘다는 생각보다 '이 많은 일을 어떻게 다 하지'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래도 '이게 내 인생에 중요한 일이 되겠구나'라고 직감은 했다.


- 뽀로로는 왜 안경을 씌웠나.

▶ 비행사가 되게 하기 위해서. 안경이 아니라 고글이다. 뽀로로에게 비행사의 꿈을 줬고, 운동을 잘하는 아이로 콘셉트를 잡았다.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대리만족을 주려 했다. 펭귄은 원래 검은색인데, 아이들이 잘 칠하는 색을 조사해 봤더니 군청색이 많았다. 그래서 파란색 몸에 흰 얼굴을 한 펭귄이 됐다.


제일 그리기 힘든 캐릭터가 뽀로로였나.

▶ 아니다. 여자 아이 '루피'다. 비버의 통통한 볼과 얼굴의 조화를 귀엽게 만들어 내는 게 정말 힘들고 어려웠다.


- 뽀로로의 '여친'(여자친구)'은 루피인가, 아니면 같은 종족인 펭귄 패티인가.

▶ 서로 삼각관계? 그런 것 같다. 다섯 살 내 아들을 보면 아들이 좋아하는 여자친구가 있고, 아들을 좋아하는 여자친구도 있다. 근데 얘들이 서로 그것에 대해 확실히 선을 긋진 않더라.


- 뽀로로 첫 방송 때 왜 울었나.

▶ 이 얘기는 좀 빼 달라. 제작진 크레딧에서 내 이름을 본 순간, 월드컵 4강 진출 때보다 더 신났고 감동을 받았다. 1초 남짓 내 이름이 지나가는데, 회사 막내 디자이너로서 받았던 설움과 고생했던 감정들이 막 올라오더라. 막 눈물이 나더라. 뽀로로가 완성되고 나서 너무 힘들어서 사실 회사를 나가려고 마음먹었다.


- 대박 난 뽀로로를 디자인했으니 돈 좀 벌었겠다.

▶ 한마디로 아니다. 저작권은 회사에 있고, 디자이너는 월급을 받을 뿐이다. 경력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수가 생각하시는 것 보다 많지는 않다. 처음 나온 뽀로로 봉제인형을 사러 마트에 갔는데 품절됐다는 말을 들었을 때 느낀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이후에 내가 디자인한 소품들이 줄줄이 상품이 돼 나왔다. 그런 건 그저 내 포트폴리오를 채우는 내용일 뿐이다.


- 뽀로로는 최상현에게 뭔가.

▶ 샘나고 좋은 존재다. 내 자식이고 내 새끼다. 솔직히 뽀로로 덕 좀 봤다. 사랑하는 아내와의 결혼을 승낙받으러 처가에 갔을 때 '뽀로로를 디자인했다'고 했더니 다행히 애를 키우던 처형이 무지 좋아해 주셨다. 어딜 가도 "뽀로로 디자인했다"고 하면 다 통한다.


- 이젠 세계인의 뽀로로가 됐다.

▶ 한 가족이 이민을 갔단다. 유치원에 간 아이가 동양인이라 무시를 당했는데. "나 뽀로로 만든 나라에서 왔어"라고 했더니 갑자기 인기가 좋아졌고 잘 적응할 수 있었단다. 인터넷에서 그 글을 보고 정말 기뻤다.




그리고 뽀로로를 만든 회사 대표의 인터뷰


국내 토종 캐릭터로 연간 380억의 매출을 내고 있는 '뽀로로'를 탄생시킨 (주)아이코닉스 최종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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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lk R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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