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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드 니로'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6.06.16 미션 (The Mission, 1986)
  2. 2016.06.15 대부(The Godfather, 1972), 어려웠던 시절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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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0년.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브라질 국경 지역에서 일어난 역사적 실화.


이 영화는 내겐 풀어야할 숙제같은 영화였다.
로버트 드니로에 푹 빠져있었던 오래전 그 때에는 금방이라도 보고 싶었던 영화였고,
영화음악에 빠져 Ennio Morricone의 음악이 좋았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어릴적 나에게는 아직은 지루하고 어려운 영화였기에
그저 언젠가는 봐야지 하고 미뤄두었던 영화였다.

 


시간이 흘러 우연처럼 이 영화를 떠올렸고,

차분한 마음으로 영화를 감상했다.

 


영화를 보면서 난 점점 화가 났다.
남의 나라 땅에 外人들이 들어와 토착민들을 힘으로 장악한 상태에서
사랑? 용서? 평화?


전쟁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행위이다.
힘으로 남의 것을 가로챈 뒤에,
빼앗긴 자에게 그들에게 이미 빼앗은 것으로,
아량을 베풀고, 자비를 베풀고, 사랑과 평화를 운운하는 것.
위선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영화 속 신부님들은 숭고했다.
끝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자 했던 가브리엘 신부(제레미 아이언스)
현실적인 방법으로 토착민에게 힘이 되어주고자 했던 멘도자(로버트 드니로)
멘도자와 함께 힘을 보탠 어린 신부
(리암 리슨... 그의 풋풋했던 젊은 날의 모습을 보는 재미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보호하고자 했던 토착민들은
신부님들과 마찬가지인 外人들의 손에 무참히 죽어갔다.
살아남은 토착민들 역시 노예가 될 것이었다.

모두 다 그 外人들이 그 지역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생기지 않았을 사건들이다.

 


그리고 영화 마지막,

'신부들은 죽고, 저만 살아 남았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죽은 건 나고, 산 자는 그들입니다.

그것은 언제나 그렇듯 죽은 자의 정신은 산 자의 기억 속에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라는 말로 끝을 맺는다.

 

저 말 속의 죽어서 기억에 남게 되는 사람은 함께 싸우다 숭고하게 죽어간 신부들을 말한다.
토착민의 죽음은?


처음부터 그들에게 外人들이 들어오지 않았다면 토착민들은 하나님을 몰랐겠지만, 근대화 되지도 못했겠지만,

그렇게 무참히 학살당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철저하게 서양인 관점에서의 Mission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역사에 가정이란 없다.
약한 세력은 센 세력에게 약탈당하고 짓밟혀 왔다.


힘, 평화, 사랑, 역사
그리고 종교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씁쓸한 영화였다.

 

또한

종교는 가장 무서운 비지니스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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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lk R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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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 (The Godfather)

 


처음 이 영화를 접했던 것은 10살 즈음 TV에서였다.
당시의 나는 오만하게 처음 몇 장면으로 그 영화의 재미를 가늠할 수 있다고 자부하는 상태였었고, 딸의 결혼식 파티 뒤에서 벌어지는 여러 청탁 장면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는체 그냥 지루한 영화라고 치부하고, 인디에나 존스 같은 화려한 볼꺼리가 없음에 불만을 품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3분여 정도 더 보다가 다른 채널로 돌려버렸었고, 그게 영화 대부와 나와의 첫 만남이었다.

 
몇 년이 더 흐르고 중학생이 되어 우연히, 역시 TV에서 이 영화를 다시 접했지만 그때에도 처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에 비디오로 대부를 다시 접하게 되었다.
그제서야 조금은 스토리가 눈에 들어왔고 이 영화가 명작이라 불리는 이유를 아주 조금 알게 되었을 뿐, 깊히있게 이해하지는 못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여러 아르바이트를 해 보고 대학생활 및 군생활을 겪은 뒤 사회생활을 하면서 다시 접한 영화 대부는,

한 마디로 거대한 쇼크였다.
그때껏 영화를 통해 받은 자극 중 그렇게 묵직한 자극은 없었다.

그 어마어마하고 묵직하며 거대한 충격 혹은 감독은 아주 오래도록 무겁게 내 가슴을 짓눌렀으며 긴 파장을 일으켰다.

 


왜 이렇게 대부를 봐 온 이야기를 장황하게 했는가..?

 


그건 대부가 오래된(1972년작) 작품으로 다른 이들에게도 이런 비슷한 경험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나 역시 여러 번 대부를 봤고 볼 때 마다 그 느낌이 달랐으며,
근래 다시 이 영화를 접했을 때에야 비로서 이 영화의 진가를 느낄 수 있었기에 혹시라도

이전에 비슷한 경험으로 따분하고 재미없는 영화로 치부하고 이름만 알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기꺼이 이제라도 느긋하게 봐 볼 영화라고 권해보고 싶다.

 

볼 때마다 느낌의 포인트가 달랐는데 이번에 내가 느낀 영화의 주된 흐름은 "아버지"였다.
특히, 마론 브란도가 열연 했던 역 비토 꼴레오네 라는 인물.

 


단신으로 어린나이에 미국으로 건너 온 그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가족에게 내색하지 않고 가정을 꾸려나간다.(대부 2)
조금씩 조직이 커가도 그의 그러한 성품은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믿음직해져 간다.

 

 


그는 식탁에서는 비지니스 얘기를 꺼낸 적이 없었으며,
가족사진을 찍을 때 가족 중 한 사람이라도 빠지면 사진을 찍지 않으려고 버텼으며,
딸의 결혼식의 참석한 사람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으며,
살아있는 자식의 안전을 위해 죽은 아들의 복수를 가슴에 묻었다.

 


그리고

 


어린 손주와 화원에서 오붓한 시간을 보내다 심장 이상으로 그의 힘들고도 고단한 삶을 내려놓는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고생하시는 어머니만을 조명하는데 여념이 없다.
상대적으로 아버지의 존재감이 사회적으로 빛을 잃어가고 있다.

 

 

IMF를 겪으며, 아버지라는 이름의 그들은 더 한층 위축되었으며 어려운 시절을 요행이 피했더라도

명퇴되거나 구조조정으로 정리해고, 은퇴 후 더더욱 힘을 잃어가고 있는, 아버지.

 


그들이 가정을 꾸리고, 유지하며, 지켜오기까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는지 우리는 모른다.

아니 모른척 하거나,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다.

 

 

왜냐면,

아버지 당신 조차 그것을 내색하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버지 비토 꼴레오네 처럼 말이다.

 

 

그는 자신의 자리를 물려준 뒤에는 그저 자식을 걱정하며,

손주와 여가를 보내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할아버지가 되었다.

정원에서 뛰노는 손주의 재롱에 흐뭇해하며, 손주를 쫓아다니는 평범한 나이든 아버지.

 

 

어려웠던 시대,

어려웠던 시절, 역사의 소용돌이 속을 안간힘으로 헤쳐나가며

살아남기 위해 궂은 일, 비굴한 상황을 감내해가며 가족에게 조금이라도 더 많은 안락을 주고자 애썼던 아버지.

 

속된 표현으로 "부랄 두쪽" 밖에 없이 맨 바닥에서 지금의 이 모든 것을 일궈온 아버지들.

 

이 영화를 보며 그런 아버지를 가슴에 담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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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lk R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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