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바 람 이 어 라 Silk Rode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418)
이슈상자 (108)
음악상자 (35)
영화상자 (32)
미술상자 (7)
사진상자 (5)
유머상자 (61)
맛상자 (37)
낙 서 (25)
일본어상자 (56)
얼추 일본어 교실 (25)
추악한 언론, 포털 행태 박제 (24)
Total
Today
Yesterday
728x90

일본화폐는 엔(円/えん)이라고 하며,

주화는 1엔, 5엔, 10엔, 50엔, 100엔, 500엔 등 6종류가 있으며,

(5엔, 50엔에는 구멍이 뚫려 있음)


 

 

 

 
 
 
 
 
 
 
지폐는 1000엔, 2000엔, 5000엔, 10000엔 4종류가 있다.
 
 
 
 
 
 
 후쿠자와 유키치 (ふくざわ ゆきち)

 

1834년-1901년
계몽가,교육가
게이오 대학 설립자
 
일본 오사카에서 출생. 1858년 에도[江戶:현재의 도쿄]에 네덜란드 어학교인 난학숙(蘭學塾)을 열고, 1860년 이후 바쿠후[幕府] 견외사절(遣外使節)로 3회에 걸쳐 해외를 여행하며 새로운 문물을 접하였다. 1868년 학숙을 이전하면서 게이오의숙[慶應義塾]으로 개칭하였는데, 이것이 오늘날 게이오의숙대학의 기원이 되었다.
메이지유신[明治維新] 후 신정부의 초빙을 사양하고 교육과 언론활동에만 전념하였다. 1873년 메이로쿠사[明六社]를 창설한 후로는 동인으로 활약하면서 실학(實學)을 장려하였으며, 부국강병을 주장하여 자본주의 발달의 사상적 근거를 마련하였다. 1882년 《시사신보》를 창간하였고, 만년에는 여성의 지위향상을 위하여 크게 공헌하였다. 저서에는 《서양사정》(1866) 《학문의 권유》(1872) 《문명론의 개략》(1875) 등 후쿠자와 3부작을 비롯하여 《복옹자전(福翁自傳)》 《신여대학(新女大學)》 등이 있다.

 그는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에 사람 없다"는 어록을 남기기도 했는데 그의 어록을 좀 더 살펴보자면,

https://ko.wikiquote.org/wiki/%ED%9B%84%EC%BF%A0%EC%9E%90%EC%99%80_%EC%9C%A0%ED%82%A4%EC%B9%98

(어록들을 살펴보면 일본에서의 평가와 우리나라에서의 평가는 크게 다를 수 밖에 없는 발언들을 많이 늘어놓은 인물이겠다)


 

 

 히구치 이치요 (ひぐち いちよう)               
 

 

1872. 3. 2 도쿄∼ 1896. 11. 23 도쿄.
일본의 시인·소설가.
본명은 히구치 나쓰(히구치 나쓰코라고도 함).
 
19세기말 일본에서 가장 중요한 여류 작가 중의 한 사람으로 도쿄 서민층의 정서와 유곽의 풍경 등을 소재로 다루었다.
하급관리의 딸로 태어나 안락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1889년 아버지가 죽자 24세때까지 어머니와 여동생을 돌보며 고통과 가난의 역경 속에 살아가야 했다.
히구치는 몇 년 간 하기노야라는 학 원에 다니며 고전문학을 공부했다. 이때 그녀는 소설 출판업에 종사하는 한 급우가 성공하는 것을 보고 생계 수단으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1891년 도쿄아사히신문의 소설 기자였던 나카라이 도스이를 소개받아 그 제자가 되었다.
나카라이는 1891~96년에 씌어진 그녀의 문학 일기에 상당한 영감을 주었으며 이 일기는 〈신록의 그늘〉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다.
히구치는 작품에서 구어체를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는 나카라이의 의견을 무시하고 독특한 고전적 산문 문체를 구사했다.
주로 옛 도쿄의 시타마치( 도시의 저지대로 서민들이 모여사는 상공업지대) 여성을 섬세하게 묘사하여 산업화 물결 속에 사라져가는 당시의 전통사회 모습을 소설에 담았다.
대표작으로는 〈섣달 그믐날〉(1894) 외에 유곽 주변에서 싹튼 어린 소년·소녀의 섬세하고 민감한 사랑 이야기를 그린 〈키재기〉 등이 있다.

 


 

슈레이 몬 (오키나와현 나하시에 있는 문)

 

 

2천엔권은 2000년을 기념으로 발행되었는데 통용은 잘 안되고,
  행운을 가져다 준다하여 기념으로 가지고 있는경우가 많다한다!
(2달러짜리 지폐를 생각하면 될 듯)
 


 

 
노구치 히데요 (のぐち ひでよ)     

  

1876. 11. 24 일본 후쿠시마 현 이나와시로∼1928. 5. 21 가나, 아크라에서 사망
일본의 세균학자.
 
본명은 노구치 세이사쿠. 전신마비로 고통받는 환자의 뇌 속에서 매독을 일으키는 병원체인 ' 트레포네마 팔리둠'을 처음으로 발견했다. 또한 오로야 열병과 '베루가 페루아나'가 모두 ' 바르토넬라 간균' 때문에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이 질병들은 오늘날 카리온 병(또는 바르토넬라증)의 두 단계라는 사실이 밝혀져 있다.
1897년 도쿄의 일류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1900년에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펜실베이니아대학교로 가서 사이먼 플렉스너 밑에서 뱀의 독을 연구했다.
1904년에 뉴욕시티의 록펠러 의학연구소에 연구원으로 들어갔으며 그후 거의 25년 동안 이곳의 후원을 받았다.
시험관에서 배양하지 못했던 미생물을 배양하는 방법을 창안해냈으며 척수성소아마비와 트라코마를 연구했고, 황열병 예방백신과 혈청제를 만들기 위해 애썼다.
아프리카에서 황열병을 연구하다가 그 병에 걸려 죽었다.
 
 
 
 
반응형
Posted by Silk Rode
, |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