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바 람 이 어 라 Silk Rode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418)
이슈상자 (108)
음악상자 (35)
영화상자 (32)
미술상자 (7)
사진상자 (5)
유머상자 (61)
맛상자 (37)
낙 서 (25)
일본어상자 (56)
얼추 일본어 교실 (25)
추악한 언론, 포털 행태 박제 (24)
Total
Today
Yesterday
728x90

안토니 가우디 이코르네트

(1852년 6월 25일 - 1926년 6월 10일)

 

내부 장식과 색, 빛이 조화를 이룬 건물들을 건축했다. 에는 사회적, 문화적으로 대단한 변화가 있었다.

가우디는 당시 카탈루냐 건축을 주도했던 고전주의 건축을 벗어나, 건조한 기하학 만이 강조된 건축이 아닌

나무, 하늘, 구름, 바람, 식물, 곤충 등 자연의 사물들을 관찰했고,

그런 형태들의 가능성에 관하여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 결과 그의 건축물은 기하학적인 형태들 외에도 곡선이 많이 사용되었으며,

내부 장식과 색, 빛이 조화를 이룬 건물들을 건축했다.

 

그의 주요 작품으로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밀라 주택, 바트요 주택, 구엘 저택, 구엘 공원,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등을 설계했다

 

[밀라 주택]

 

 

[바트요 주택]

 

 

[구엘 저택]

 

 

[구엘공원]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그의 건물 중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은 현재까지 모두 7 작품이다.


1.비센스 주택 1878-1880
2.구엘 저택 1885-1889
3.구엘 공장단지 내 지하경당 1898-1914
4.구엘 공원 1900-1914
5.바트요 주택 1904-1906
6.밀라 주택 1905-1910
7.성가족성당 탄생 입면 및 지하경당 1884-1926

 

그 중 구엘저택과 밀라주택, 성가족성당은 각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꼽을 수 있으며,

바르셀로나에 있는 성가족 성당은 아직도 건축 중이라고 한다.

 

 

어린 시절 터키에서 자랐다고 하는 가우디는 그의 건축물에 기존의 서양 건축물과는 다른 이국적인 느낌이 있는데,

어려서 터키에서 본 건축물(이슬람 건축에서 온 기하학무늬)에 대한 영향이 있지 않나 하는 추정을 하는 사람도 있다.

 

당시의 바르셀로나는 산업혁명 이후 급격히 성장한 개발도시이자 무역도시였다.
스페인 내에서 가장 잘 사는 도시이자 유럽대륙의 문물을 가장 빨리 받아들이던 개방적인 도시였던 점 또한 가우디의 건축물이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되겠다.

 

그리고 위 사진들을 보다보면 "구엘 주택, 구엘 공원"이 있는데, "구엘"은 사람 이름이다.

졸업을 목전에 둔 가우디가 ‘졸업작품’과 같은 의미로 유리 전시장을 제작했는데,

파리에서 이를 우연히 본 거부 ‘에우세비 구엘’(Eusebio Guell Bacicalupi, 초상화)은 가우디의 사무소를 직접 찾아온다.

구엘은 벽돌회사 사장이자, 아메리카와의 무역으로 떼돈을 번 사업가다. 구엘은 높은 수준의 작품과 건물을 수집하는 사람이었는데 한눈에 가우디를 알아보고 가우디의 클라이언트이자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네 마음대로 지어봐라’라며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가우디가 구엘을 위해 처음 지은 건물은 “구엘 궁전”이다. 이름은 궁전이지만 지대가 좁았다.

18m × 22m로 120평이 좀 안 되는 넓이다. 기둥을 제외하면 전용면적은 80평이 안 될 수도 있다.

여기서 (클라이언트를 위한) 가우디의 유저빌리티가 빛을 발한다.

가우디는 집 어느 곳이라도 빛이 흐르도록 천장에 ‘빛의 우물’을 뚫었고, 통행에 방해되는 칸막이나 기둥을 없애버렸다. 결과적으로 구엘 궁전은 실평수가 매우 큰 집이 됐다. 동시에 몽환적이고 동화적인 파사드를 세워 구엘의 간지를 세워준다.

 

[현수선]

현수선(懸垂線, Catenary)은 물리학과 기하학에서, 밀도가 균일한 사슬이나 케이블 따위가 양끝 부분만이 고정되어 그 자체 무게만으로 드리워져 있을 때 나타나는 곡선이다. 쌍곡코사인 함수로 나타낼 수 있으며, 수학적으로는 상당히 다르지만 포물선과 비슷해보여 혼동될 수 있다. 특정한 아치 설계에서도 사용되는 모양이다. 평행한 두 원형 링에 비누막을 쳤을 때 나타나는 곡면을 현수면이라고 하는데, 이를 중심축 방향으로 자른 선이 또한 현수선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설계 시, 현수선 기법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가우디와 피카소]

가우디는 이렇게 저택들을 지으며 ‘부자만을 위해 일한다’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실제로는 저렴한 비용으로 수녀원을 짓기도 했다) 특히 젊은 예술가들에게 비난을 받곤 했는데, 그 비난의 선두에 선 것이 젊은 화가 피카소였다.

그러나 결국은 피카소도 타일을 깨뜨려 다시 모자이크하는 가우디의 ‘트렌카디스’(trencadis) 작법에 영향을 받았다. 트렌카디스와 피카소 작품의 유사성은 그림만 봐도 느껴진다. 인간에 대해서는 비난했으나 예술에 대해서는 비난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의 죽음에 대한 에피소드]

1918년 부터는 자신이 평생동안 건축해온 성가정 (성가족) 대성당 건설에 매진했지만 재정 문제로 인해 끝을 보지 못하고,

1926년 6월 7일 성당에서 미사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길에 지나가던 노면 전차에 부딪혀 치명상을 당했다.

그러나 운전수는 지저분한 노숙인으로 생각하고 그를 길 옆에 팽개치고 노면 전차를 몰고 가버렸다. 사람들이 병원으로 데려가고자 택시를 찾았지만 역시 노숙인으로 생각한 기사들은 그냥 지나쳐 3번의 승차 거부 끝에 4번째로 잡은 택시 운전수가 겨우 운전했지만 병원도 2곳이나 진료 거부를 당해 빈민들을 구제하기 위한 무상 병원에 놔두고 가버렸다고 한다.

문제는 신분을 증명하는 것인데 병원에서 방치된 채로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린 가우디는 병원 간호사에게 이름을 말하자 병원 관계자들은 경악을 하며 가우디의 친척들과 친구들에게 급히 연락했다고 한다. 서둘러 달려온 그들이 다른 병원으로 옮기자고 말했지만 가우디는

 

"옷차림을 보고 판단하는 이들에게 이 거지같은 가우디가 이런 곳에서 죽는다는 것을 보여주게 하라.

그리고 난 가난한 사람들 곁에 있다가 죽는 게 낫다"

 

라며 그대로 빈민 병원에 남았고 결국 1926년 6월 10일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를 죽게 만든 노면 전차 운전수는 파직과 동시에 구속되었으며, 승차를 거부한 택시 운전수 3명도 불구속 입건되었다.

결국 택시 운전수 3명과 그의 치료를 거부했던 병원은 막대한 배상금을 가우디 유족에게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장례식은 1926년 6월 13일 많은 군중들이 모인 가운데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에서 성대하게 거행되었고, 유해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지하 묘지에 안장되었다.

 

그가 남긴 기록물로는,

20대에 그가 직접 7년간 사용했던 노트 한 권과, 장식예술 박람회의 관람하고 나서 잡지에 기고한 비평의 기사글, 개인적인 서신들이 고작이다. 건축적 내용을 담은 기록물로는 20대 가우디의 노트가 유일하다. 건축가 가우디의 건축적 고민들을 엿볼 수 있는 그의 노트는 <장식>이라는 이름으로 2014년 처음 우리말로 정식 번역되었고, 2015년에는 가우디의 애석한 죽음을 기리며 그의 동료들이 쓴 최초의 가우디 전기가 우리말로 번역되었다.

 

 

 

반응형
Posted by Silk Rode
, |
728x90

패션계는 샤넬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코코 샤넬. 프랑스의 복식 디자이너이자 세계적인 패션 아이콘.

본명은 가브리엘 보뇌르 샤넬(Gabrielle Bonheur Chanel). 메종 샤넬의  설립자이다.

코코 샤넬은 가난하던 시절 변두리 술집에서 노래 부르고 하던 시절에 사람들이 부르던 애칭이었다.

원래의 본명은 가브리엘 샤넬이었다고 한다. 코코 샤넬은 이 예명이 좋아 자신을 '코코'라고 부르는 게 참 좋았다고 한다.

 

 

샤넬은 여성복에 대한 유럽의 전통, 코르셋을 많이 이용하던 1910~1920년대의 여성복에 대해 왜 여자들은 비실용적인, 쓸모없는 복장을 고수해야 하는지 회의를 느꼈다고 한다.

 

초경을 시작하기 이전의 여자아이에게는 무릎 길이의 치마를, 초경을 시작하여 성인 여성으로서의 대우가 시작되면

발등까지 덮는 긴 치마를 입는 것. 이것은 동서남북을 막론한 유럽의 오랜 전통이었다.

19세기 말엽부터 20세기 초반에 촬영된 유럽 각국 왕실이나 귀족들이 남긴 전신 사진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역으로 남자의 경우 어린 남자아이 혹은 어린 소년에게만 반바지를 입혔고, 그가 노동력과 분별력을 갖춘 성인 남성으로 성장해야 긴 바지를 입는다. 요즘은 많이 없어졌지만 유럽 남성들이 편하다는 이유로 툭하면 반바지를 입는 미국 성인 남성들을 비웃던 시선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 것. 여담이지만 어린 남자아이에게 반바지를 입히는 전통은 이후 한창 근대화를 추진하던 일본으로 건너가 한겨울에도 반바지를 입는 관습이 생기게 되었다.

 

샤넬은 당시 애인이던 웨스트민스터 공작의 고향 영국에서 신사복의 소재를 여성에게 적용하여 스포티하고 심플한 디자인의 현대적 여성복 '샤넬 수트'로 간단하고 입기 편한 옷을 모토로 하는 디자인 활동을 시작하여 답답한 속옷이나 장식성이 많은 옷으로부터 여성을 해방하는 실마리를 만들었다. 그야말로 현대 여성복의 시초라 할 수 있겠다.

(실제 그녀가 디자인에 영감을 얻은 것들은 대부분 서민층의 아이템이었는데, 그렇게 모티브를 얻어 탄생한 제품들이 오늘날 명품의 최정점에 있다는 게 엄청난 아이러니.)

간단하고 입기 편한 옷을 모토로 하는 디자인 활동을 시작해서

코르셋등 답답한 속옷이나 장식성이 많은 옷들로 부터 여성을 해방하는 실마리를 제공했다는 평이 있다.

(여성복에 저지라는 소재를 처음으로 사용한 것도 샤넬이라고 한다)

 

샤넬 이전 패션

 

 

샤넬 이후 패션

 

 

 

동시대 여성들은 목끝까지 단추를 채우고 허리를 조이는 코르셋의 고통에서 허덕이고 있을 때
그녀는 과감히 코르셋을 벗어 던지고 목을 드러내는 셔츠에 발목이 드러나는 바지를 입음으로써
여성들에게 활동의 자유, 선택의 자유를 주었고,
깔끔한 선과 간결한 이미지 만으로도 최고의 여성성을 끌어낼 수 있다는 패션 철학은
남성의 속옷감으로 사용되던 저지를 훌륭한 여성복 소재로 재탄생시켰다고 한다.

 

 

 

장식이 생략된 옷의 본체에 브레드나 코드의 테두리를 붙이고, 당시에는 보기 드문 크고 작은 색유리나 크리스탈 글라스의 액세서리를 붙이기도 하였다. 간단하고 입기 편하며 활동적이고 여성미가 넘치는 샤넬 스타일은 유행의 변천 속에서도 별로 변함없이 오늘날에도 애용된다.

또, 그녀가 선택한 향수인 샤넬 No.5도 유명하다.

마릴린 먼로가 생전에 자기는 이것만 입고(뿌리고) 잔다고 해서 더 유명해졌다.

(1920년대 초 가브리엘 샤넬은 자신의 이름을 건 향수를 런칭하려고 했고, 당시 유명 조향사였던 Ernest Beaux에게 의뢰하여 몇 가지 샘플을 건네받았다. 그 중 그녀가 선택한 향이 바로 5번이다. 그래서 제품명이 간단하게 5번이 됐다는 이야기.)

 

 

 

반응형
Posted by Silk Rode
, |

자동차 기능들 (1)

이슈상자 / 2018. 7. 28. 21:12
728x90

유용한 자동차 첨단기능과 사용법(더 뉴 K5 하이브리드 기준)을 소개한다.


◇어드밴스드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ASCC)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SCC)은 차량의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해주거나, 앞차와의 간격에 따라 스스로 가감속 해주는 기능이다.

요즘 차량에 적용되는 SCC는 앞차와의 간격을 체크하며 앞차가 멈추면 따라 멈췄다가 다시 출발하는 ‘스탑앤고(Stop & Go)’ 기능이 포함되는데 이를 어드밴스드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ASCC)이라고 한다.

ASCC의 활용도는 매우 높다. 반복적으로 페달을 밟았다 떼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운전자의 피로도를 획기적으로 줄여준다.

ASCC는 스티어링휠에 위치한 크루즈(Cruise) 버튼으로 활성화한다. 크루즈 버튼을 누르고 버튼 아래 ‘SET -’ 레버를 아래로 당기면 ASCC 모드가 시작한다. 이후에는 크루즈 버튼 하단의 ‘RES +’를 위로 올리거나 ‘SET -’를 아래로 내려 원하는 속도로 설정한다. 앞차와의 간격도 스티어링휠에 달린 버튼을 통해 조절할 수 있다. ASCC 기능을 끄고 싶다면 ‘취소(Cancel)’ 버튼을 누르거나 브레이크 페달을 밟으면 된다.

ASCC 기능은 차량이 5분 이상 정차하거나 차량 정체가 심해 스탑앤고 기능이 정차와 주행을 장시간 반복할 경우, 가속페달을 장시간 지속해서 밟은 경우, 그 외 차량에 위험요소가 감지된 경우에는 자동으로 기능이 해제된다.



◇차로 이탈방지 보조 시스템(LKA)

운전 중 제일 위험한 건 지정된 차선을 벗어날 때다. 부주의나 졸음 등으로 인한 사고 대부분이 자신도 모르게 차선을 이탈할 때 발생한다. 차로 이탈방지 보조 시스템(LKA)은 자동차의 차로 이탈 방지를 막는 기능이다. 시동이 켜진 상태에서 차 양옆으로 노선이 그려진 작동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LKA 기능 사용 준비 끝이다.

준비 상태에서 자동차가 양쪽 차선을 모두 인지하면 클러스터 화면에서 차선 표시 부분이 회색에서 흰색으로 변하며 LKA가 작동한다. 차선을 이탈할 것 같은 상황을 인지하면 이탈 차선 쪽 그래픽이 깜빡이며 경고를 보낸다. 차량 속도가 60km/h 이상일 때는 클러스터 화면에 스티어링휠 그래픽 모양이 나타나며 조향을 보조해주는 기능도 작동한다. 자동차가 차로를 이탈하려 하면 스티어링휠을 스스로 조작해 이를 방지한다. 물론 운전자가 차로를 변경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스티어링휠을 돌릴 경우에는 개입하지 않는다.




◇고속도로 주행 보조 시스템(HDA)

고속도로 주행 보조 시스템(HDA)은 고속도로에서 차간거리와 차선 이탈방지를 통합해 제어해주는 시스템이다. 앞서 소개한 SCC와 LKA가 통합된 기능인데 고속도로에서만 활성화된다. 과속 단속 카메라가 등장하면 스스로 속도를 조절하는 신통함까지 보인다.

HDA는 클러스터 화면에서 ‘사용자 설정>운전자 보조>고속도로 주행 보조 시스템’에서 기능을 켜고 끌 수 있다. 한번 기능을 켜두면 다음에도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에 자동차를 탈 때마다 다시 설정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다.

실제 작동법은 SCC의 작동법과 동일합니다. 자동차가 고속도로에 진입해있을 때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로 속도와 차간거리를 설정하면 자동으로 HDA 기능이 활성화한다. 고속도로가 아닌 곳에서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을 사용하다 고속도로로 진입하는 경우에도 자동으로 HDA가 활성화한다. 클러스터 화면의 HDA 활성화 표시(녹색 운전대 그림)를 통해 기능이 잘 작동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럼 HDA와 ASCC+LKA(어드밴스드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차로 이탈방지 보조 시스템)의 차이는 뭘까. 작동 시간이다. ASCC+LKA는 스티어링휠에서 약 15초 정도 손을 때면 경고음을 울리지만, HDA는 훨씬 더 긴 시간 동안 손을 놓고 있어도 된다.




◇주행 중 후방 영상 디스플레이(DRM)

운전자는 주행 중인 자동차의 후방을 사이드미러나, 룸미러로 확인한다. 하지만 거울이 담을 수 없는 사각지대가 존재하기 때문에 늘 약간의 불안함을 안고 주행할 수밖에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기능이 후방 영상 디스플레이(DRM)이다. 후방에 장착된 카메라로 후방 모습을 전면 모니터에 보여주는 기능이다.

DRM은 변속레버 근처의 카메라 그림 위에 VIEW라고 적힌 DRM 버튼을 눌러 활성화한다. 운전자가 확인할 수 없는 사각지대를 주행 중에도 볼 수 있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차선 변경 시 안전운전에 도움을 주는 기능이다.


[출처]
https://auto.v.daum.net/v/20180728100011905?f=m

반응형
Posted by Silk Rode
, |
728x90

■ 유시민 작가 추도사

추도사가 아니고, 노회찬 대표님께 짤막한 편지를 하나 써왔습니다. 써온 대로 읽겠습니다. 다음 생에서 또 만나요. 우리에게 다음 생이란 없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지금도 그렇다고 믿습니다. 그렇지만 다음 생이 또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때 만나는 세상이 더 정의롭고, 더 평화로운 곳이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온전하게 자기 자신에게 행복한 삶을 살아도 되면 좋겠습니다. 회찬이 형, 늘 형으로 여겼지만 단 한 번도 형이라고 불러보지는 못 했습니다. 오늘 처음으로 불러볼게요 형! 다음 생에는 더 좋은 곳에서 태어나세요. 더 자주 더 멋지게, 첼로를 켜고, 더 아름다운 글을 더 많이 쓰고 김지선님을 또 만나서 더 크고 더 깊은 사랑을 나누세요 그리고 가끔씩은 물 맑은 호수로 저와 단둘이 낚시를 가기로 해요. 회찬이 형. 완벽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좋은 사람이어서 형을 좋아했어요. 다음 생은 저도 더 좋은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어요. 그때는, 만나는 첫 순간부터 형이라고 할게요. 잘 가요, 회찬이 형. 아시죠? 형과 함께한 모든 시간이 좋았다는 것을요.



■ 영화배우 박중훈씨 추도사

저는 노회찬 의원님을 유권자이자 팬으로 알았습니다. 14년 전 지인의 소개로 알았습니다. 형님, 아우하면서 서로 잘 지냈어요.
평소에 의원님이 해주신 말씀이 말을 잘하는 사람보다는 행동을 잘하는 사람을 더 인정하고 존경하고, 말잘하는 사람보다는 글 잘쓰는 사람을 더 인정하고 존경한다고 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우위에 있는 사람은 행동하는 사람이라고 저에게 일러주셨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제가 노회찬 의원님을 따르고 형님으로 존경했던 가장 큰 이유는 정치적 성향이나 생각을 떠나서 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고, 초지일관 일생을 던져서였습니다. 수년 전 같이 선거운동을 하다 너무 과로하시는 것 같아 ‘형님 좀 쉬시죠, 쉬시고 하시죠’ 했더니 그 와중에도 웃으시면서 ‘아우, 휴대폰 배터리가 다 방전된 다음에 충전하는 걸세. 나는 유권자 여러분에게 내 휴대폰 배터리를 모두 쓰고싶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선거에서 승리하신 적도 많았지만 누가봐도 되지도 않을, 이기지 않을 선거에서 만나서 말씀 드리면 ‘아우, 나는 초등학교 반장선거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진적이 없다네.’ 근데 진 적 많았거든요.
얼마전 가장 최근에 뵌 것이 1월, 지인과 함께 소주 한잔 했습니다. 그때 제가 웃으면서 우스갯소리로 ‘형님 왜이렇게 잘 생기시고 멋있어요’ 했더니 껄껄 웃으시면서 농담으로 받아주시며 ‘내가 원래 멋있고 잘생겼어’ 하시면서 여유롭게 웃어넘기시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그것이 마지막으로 뵌 모습이었습니다.
어떻게든 이렇게 여유롭게 농담을 던지지만, 혼자서 외롭고 힘든시간을 보내셨다 생각하니 마음이 메입니다. 제가 형님에게 문자를 보낸적이 있어요. 길지 않은 문자였는데 ‘형님 오랜만입니다. 전 형님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존경합니다. 앞으로도 그럴겁니다.’
마지막으로 형님께 한 말씀 드리고 인사드리겠습니다. 형님 저 중훈이에요. 듣고 계시죠? 이제 겨울에 뜨거운 굴국밥 누구랑 먹습니까? 형님 그리워요. 더 절망스러운건 이 그리움이 점점 더 커질것같아요. 형님 이러시면 안돼죠. 편안하게 영면하시길 이자리 모든 사람과 함께 진심으로 기원하겠습니다.



■ 김승하 KTX승무원 해고자 추도사

안녕하십니까 KTX 해고승무원 김승하입니다.
KTX 승무원이 10여년의 복직투쟁을 마감하고 180여 명이 코레일 사원으로 입사하게 됐습니다. 오랜 기간 투쟁해 온 KTX 승무원 노동자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
상시적으로 필요한 안전업무를 외주화하겠다는 공기업의 태도가 12년 동안이나 용인 되어 온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번 합의를 계기로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노회찬 의원님이 전하시려던 마지막 메시지입니다. 이 말씀을 육성으로 들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합니다.
KTX 승무원의 해고 투쟁, 4526일, 그 시작과 끝에 함께 해주신 저희들에겐 항상 따뜻한 삼촌 같으셨던 분, 노회찬 의원님은 늘 소수 약자를 위해 싸우셨습니다. 노회찬 의원님은 강자와의 싸움에 망설이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가운데 유머와 품위도 잃지 않으셨습니다.
님은 우리를 지키려고 평생 살아오셨으나, 우리는 님을 지켜드리지 못했습니다. 죄송하고 죄송합니다. 이제 의원님이 남기신 뜻, 세상의 모든 약자들이 모여 펼쳐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님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
항상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 옆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셨던 모습 기억하고, 그 뜻 이어가겠습니다.
대신 그곳에서도 우리를 지켜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사랑합니다.



■ 이정미 정의당 대표

사랑하는 당원여러분, 그리고 노회찬 원내대표 마지막 가시는 길에 함께 해주신 시민여러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노회찬 원내대표의 장례식은 그가 걸어온 삶의 궤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머리를 숙이고 조문객을 맞으면 그들의 신발을 내내 보게 됩니다. 잘 닦여진 구두도 있지만, 낡고 닳은 작업화에, 어떤 이는 절을 할 때 뒤꿈치가 헤어진 양말을 신었습니다. 살아생전 구두 한 켤레로 사시사철을 지내며 낡고 닳은 구두를 신고 다닌 대표님이 생각났습니다. 그분들이 그저께 멋지고 세련된 구두 한 켤레를 대표님 영전에 놓고 갔습니다. 대표님이 신으시면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살아계실 때 저런 구두 한 켤레 못 사드린 게 내내 억이 막혀옵니다. 남녀노소, 직업을 가리지 않고 많은 분들이 와 주셨습니다. 세월호 유가족과 삼성반도체 반올림 가족들이 찾아오셔서 위로해 주셨습니다. 정부 관계자와 사법부 여러분, 그리고 많은 정치인들께서도 다른 시민들과 똑같이 순서를 기다려 고인의 가는 길을 배웅해 주셨습니다. 이 모든 분들께 상임 장례위원장으로서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어느 언론에서는 “대통령이 보낸 조화도 있고, 기업인도 있고, 청소부도 있고, 장애인도 있고, 노인도 있고, 어린아이도 있고...이런 장례식은 처음 보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장례식장의 모습은 노회찬 원내대표가 평생 꿈꾸던 세상과 닮아있습니다. 노회찬은, 박정희 군부 독재에 맞서 휴학을 주도했던 고교생에서, 노동자 해방 세상을 위해 인천으로 향했던 용접공, 그리고 한국 진보정치의 상징이 되기까지, 누구나 존엄한 평등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 평생을 바쳤습니다. 그는 언제나 일하는 사람과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 우리 사회 약자들의 길벗이었습니다. 격한 정치 현장에서도 재치와 유머를 잃지 않았고 그러면서도 상대를 존중할 줄 아는 탁월한 정치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정견이 다른 이들조차 그의 말이라면 경청했습니다. 이런 노회찬을 보고, 많은 분들이 진보정치의 아이콘이라고 말씀하시지만 노회찬은 홀로 빛나는 별이 되고자 한 적이 없습니다. 그는 자신이 지켜야할 고단하고 약한 사람들의 곁에 늘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그들을 위해 기꺼이 마중물이 되었습니다. 저에게 노회찬은 정치인으로서 사수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으로 저에게 선출직 출마를 권유했고, 진보정치의 매순간 조언을 아끼지 않았으며, 고난도 즐거움도 함께 했습니다. 제가 2년 전 국회의원 당선이 되었을 때 노회찬 원내대표가 전화를 걸어 저에게 했던 첫 마디가 “한번만 하기 없기 입니다”였습니다. 노회찬 심상정 말고도 지역구 돌파에 성공할 수 있는 의원이 정의당에 반드시 나와야 한다는 바람이었습니다. 저 역시 그에게 그 바람을 지키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최근 한 방송사가 공개한 미공개 영상에서도, 노회찬은 “10년 안에 정의당 출신 대통령이 반드시 나온다”고 확신해서 말합니다. 이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 사랑했을 때만 나올 수 있는 확신입니다. 그에게 정의당은 영혼이었고, 생을 다해서라도 지켜야만 하는 존재였습니다. 결국 그는 정의당을 위해 자신을 바쳤습니다. 노회찬, 심상정 두 존경하는 선배와 함께 우리 당을 미생 정당에서 완생 정당으로 발전시키고, 집권정당의 초석을 쌓겠다고 했던 제 다짐도 이제 지킬 수 없게 됐습니다. 안타깝고 원통합니다. 그러나 저는 노회찬의 꿈을 중단하지 않을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노회찬 없는 정의당을 어떻게 할 것인지, 누가 노회찬을 대신할 것인지 묻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그 누구도 노회찬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이도 노회찬을 대신할 수 없으므로, 정의당 모두가 노회찬이 되어야 합니다. 앞으로 두배 세배 분발하고, 더 단단해 지고 굳세져야 합니다. 노회찬이 그랬던 것처럼 거대 재벌 권력에 맞서는 ‘기백’을 잃지 말고, 일하는 사람들과 약자들의 이익을 수호하는 ‘투혼’이 돼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순간에도 인간성과 유쾌함을 잃지 않는 ‘웃음’이 돼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우리를 찾아주신 국민들께 보답하는 길입니다. 깊은 슬픔에 빠져 있을 때 오셔서, 용기를 가져달라, 포기하지 말아 달라고 말씀해 주신 여러분 앞에서 더 이상 슬퍼해서는 안됩니다. 정의당은 수천 수만의 노회찬으로 부활하여 반드시 한국 정치를 바꿀 것입니다. 많은 분들께서 앞으로 ‘노회찬이 없는 국회’는 어떻게 될지도 걱정하십니다. 장례식장에 오신 분들이 빠짐없이 “대한민국에 꼭 필요한 사람이었는데 너무 아깝다”고 합니다. 그리고 모두가 저의 손을 잡고 “미안하다”고 하십니다. 이제 더 이상 유권자가 자신의 선택에 미안해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노회찬의 뜻을 지지하면서도 노회찬을 찍을 수 없게 만드는 낡은 정치 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우리는 ‘노회찬 없는 국회’를 계속 견뎌야만 합니다. 죄 없는 시민들이 더 이상 미안해하지 않도록, 노회찬이 헌신했던 약자와 일하는 사람들을 지키는 정치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이젠 정치 제도 개혁에 함께 해 주십시오. 그럴 때 노회찬은 분명히 우리 정치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대표님, 대표님. 오늘 한잔해요’, 그러면 ‘아, 좋지, 내가 근처 동네에 진짜 맛있는 집 알고 있는데 거기 예약해둘게요’, 그렇게 술잔을 기울일 수 있는 날이 제게 사라졌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습니다. 자신은 양복 한 벌을 10년 넘게 입으면서도, 동지들에게 무한히 넓은 사랑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준 당신이 없는 세상이 너무도 황량하게 느껴집니다. 영원히 잊지 못할 사랑하는 노회찬이여. 이제 영면하소서. 사랑하는 당신의 평생 동지 김지선 옆에는 이제 정의당이 굳건히 있겠습니다. 다시 만날 때까지, 우리 모두는 당신이 가르치고 보여준 대로 정의롭고 평등한 새로운 나라로 나아가겠습니다.



■ 심상정 의원

모두 바쁘실 텐데, 이렇게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우리 대표님과 함께 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우리 대표님께서 너무 갑자기 떠나셔서 가시는 길이 무척 외로우실까봐 걱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전국에서 정말 많은 시민들께서 애도해주시고, 위로해주셔서 우리 대표님께서 가시는 길이 덜 외로울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아파하실 때 우리 대표님이 계셨으면 유머 한마디로 위로해주셨을 텐데, 제가 그런 재주가 없네요.
여러분께서 많이 사랑하셨던 정말 멋진 우리의 정치 지도자 노회찬을 지키지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
시대의 부름에 망설이지 않고 달려가셨고, 또 고되고, 고된 진보정치의 길을 앞장서서 헤쳐오신 분입니다.
저희는 늘 대화를 침묵으로 했습니다. 침묵이 믿음이고, 위로고, 이심전심이기 때문에 이번에도 침묵하면서 기도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수많은 번뇌의 나날로 날밤을 보냈을 대표님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집니다.
우리 지선 언니도 엊그제, 저한테 투정을 했습니다. 그이는 당이 99퍼센트고, 여러분이 99퍼센트고 나는 1퍼센트도 아니라고.
그렇게 돌이켜보니까 우리 대표님 만난 지가 30년이 되었습니다. 우리 대표님 용접공 하고 저는 구로동에서 미싱사하고 그렇게 알게 되어서 그 후 민주노동당부터 정의당까지 그 진보정치의 험한 노선을 함께 걸어왔습니다. 욕도 함께 먹고 칭찬도 함께 받고, 함께 좌절하고, 함께 일어섰습니다.
우리 대표님이 “나는 멈추지만, 당은 앞으로 나아가라” 말씀하셨지만, 저는 노회찬 없는 정치를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노회찬의 꿈이 제 꿈이고, 우리 정의당의 꿈이고, 우리 국민들이 바라는 정치라고 저는 믿습니다.
끝까지 우리 대표님하고 함께 가겠습니다. 우리 대표님이 이루고자 했던 꿈. 여러분과 제가 꼭 이루겠습니다. 품격 있고 아름다운 정당 만들어서 국민들에게 큰 사랑 받겠습니다.
여러분들, 우리 대표님 기억해주시고 사랑해주십시오.
다시 한 번 여러분들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 문희상 국회의장 영결사 전문

노회찬 의원님!

이곳 국회에는 한여름 처연한 매미 울음만 가득합니다.
제가 왜 이 자리에 서있는 것입니까?
어떻게 하다가 이 자리에서
노회찬 의원님을 떠나보내는 영결사를 읽고 있는 것입니까?

태양빛 가득한 계절이건만
우리 모두는 어두운 터널에 들어선 듯 참담한 심정으로 모여 있습니다.

둘러보면 의원회관 입구에서 본청입구에서
노회찬 의원님의 모습이 보일 듯합니다.
삶에 대한 치열한 고민 속에서도 여유 가득한 표정의 우리 동료,
노 의원님을 만날 것만 같습니다.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믿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현실이라는 것에 황망함과 비통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깊은 슬픔입니다.
설명할 수 없는 엄청난 충격이 가시질 않습니다.

노회찬 의원님!
당신은 정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은 항상 시대를 선구했고 진보정치의 상징이었습니다.
정의를 위해서라면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만류에도
거대 권력과의 싸움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남긴 메시지에서도 노동자의 삶을 함께 아파했고
사회적 약자의 승리를 함께 기뻐했습니다.

정치의 본질이 못가진자, 없는 자, 슬픈 자, 억압받는 자 편에
늘 서야 한다고 생각했던 당신은 정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노회찬 의원님!
당신의 삶은 많은 이들의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경기고등학교 재학시절부터 서슬 퍼렇던 유신에 항거했습니다.
보장된 주류의 편안한 삶 대신 민주주의와 노동현장에서
온몸을 던져 투쟁했습니다.

낡은 구두, 오래된 셔츠와 넥타이가 말해주는
대중정치인의 검소함과 청렴함은 젊은 세대에게 귀감이 되었습니다.
한국 정치사에 진보정치와 생활정치의 깃발을 세워
사회적 약자와 노동자, 서민의 버팀목이 돼주었습니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함부로 걷지 마라.
오늘 내가 가는 이 발자취는 뒷사람의 이정표가 된다.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답설야중거 불수호난행)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 (금일아행적 수작후인정)」

마치 이 말씀을 온 몸으로 실천하듯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고 권력에 굴복하지 않았으며,
명예를 중시하고 신중했던 삶이었습니다.
당신의 삶은 많은 이들의 이정표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노회찬 의원님!

당신은 22일 저녁 병상의 어머님을 찾아뵙고
동생의 집을 들렀지만, 만나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그 누구도 꿈속에서조차 상상하지 못했을
마지막 밤을 보내고 우리 곁을 떠나갔습니다.

차마 이 길을 선택한
노회찬 의원님의 고뇌와 번민, 회한과 고통을 생각하면
주체할 수 없는 눈물만 흐를 뿐입니다.

당신은 여기서 멈췄지만 추구하던 가치와 정신은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노회찬 의원님!

지난 닷새 동안 당신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수많은 이들이
눈물 속에서 꽃을 건넸습니다.
흐드러지게 꽃피었어야 할 거인과의
갑작스런 작별을 온 국민이 애도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마지막을 동료들과 함께 국회장을 치를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유가족 여러분께 가슴 깊이 우러나오는
감사의 말씀과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노회찬 의원님, 이제 평생을 짊어졌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영원한 평안을 누리십시오.
당신이 한국정치사에 남긴 발자취와 정신은
우리 국회와 대한민국의 역사 속에서 길이 빛날 것입니다.

부디 영면하소서.


2018년 7월 27일
장의위원장 국회의장 문희상

반응형
Posted by Silk Rode
, |
728x90

 

 

故노회찬 ‘정당장’으로…그가 생전 밝힌 자녀 없는 이유

고(故)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장례가 5일장으로 치러진다. 정의당은 23일 고인의 장례를 5일장인 정당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며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상임장례위원장을 맡는다고 밝혔다. 상주는 배우자 김지선씨, 동생 노회건씨다. 
 
1956년생인 고인은 1988년 12월, 두 살 연상의 김씨와 결혼했다. 그 즈음 노 원내대표는 인민노련 결성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적용돼 신혼생활과 수배 생활을 함께 하고 있었다. 결국 이듬해 경찰에 체포됐고 그는 법원으로부터 실형을 받고 1992년까지 2년6개월 간 만기 복역했다. 


노 원내대표는 생전 인터뷰에서 자녀가 없는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둘 다 늦게 결혼했고, 또 제가 7년간 수배당하다가 교도소 갔다 오니까 첫 아이를 갖기엔 너무 늦은 나이가 됐다. 사실 그동안 아이를 갖기 위해 한약도 먹고 용하다는 병원에 다니면서 꽤 노력을 했지만, 지금은 포기했다”고 말이다. 입양도 시도했지만 당시엔 국회의원 신분도 아니었고 수입이 일정치 않아 거절당했다고 한다. 
 
생활고도 고백했다. 그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제가 감옥에 있는 동안 집사람이 제 옥바라지를 하면서 살림을 꾸렸다. 집사람이 ‘여성의 전화’에서 일을 하면서 ‘다만 얼마라도 좋으니 생활비는 꾸준하게 벌어다 달라’라고 하더라. 그래서 (매달) 30만원을 약속했는데, 결국 지키지 못했다”며 “(생활고 때문에) 옷은 아파트 단지 내 재활용품 모아놓은 데서 주워다 입었고, 또 TV같은 것은 아예 살 생각도 못했어요. 결국 누가 쓰다 버린 걸 가져다 보고 있다”고 말했다.

 

닳은 구두 굽·막걸리집에서 함께 사진…지역민에 비친 노회찬

 

 

우린 이런 정치인을 잃었다.

이런 정치인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를 잃은지 몇일이 지났으나 그 상실감, 비통함이 가시질 않는다.

반응형
Posted by Silk Rode
, |
728x90

 

 

2018년 7월 23일.

내가 좋아하는 정치인 노회찬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슬프다.

비통하다.

허망하다.

황망하다.

뭔지 모를 울분도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그 만큼 대한민국에 기여하며 살아온 정치인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 고생을 해서 지금에 이르렀는데, 그 끝이 너무나 안타깝다.

 

가깝게 지내던 유시민 작가의 빈소 방문 뉴스를 보니 다시금 눈물이 왈칵 나오려한다.

 

오늘을 잊지 않기 위해 이 글은 남긴다.

반응형
Posted by Silk Rode
, |
728x90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

왠지 저 가게에 손님분들께 드리라고 뭔가를 후원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김선자 할머니, 그 따님분...

감사합니다.

 

해뜨는식당 만세!

반응형
Posted by Silk Rode
, |
728x90

정말 좋은 판사 리스트 시즌2



# 허경호(영장 전담 판사) (★★★★★★)

※별명 : 프로기각러,귀가도우미


- 2018.07.05 권성동 법사위원장 영장 기각 - 강원랜드 채용비리와 관련해 부정한 청탁을 한 혐의

 http://www.namdo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81030

 

- 2018.06.20 이명희 한진회장 부인 영장 기각 - 필리핀 가사도우미 불법 고용 혐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447258&CMPT_CD=P0001&utm_campaign=daum_news&utm_source=daum&utm_medium=daumnews

 

- 2018.05.31 이종명 전 국정원 차장 영장 기각 - 이명박 정권 국가정보원의 야권·진보 인사 불법사찰 의혹에 관여한 혐의

 http://www.yonhapnewstv.co.kr/MYH20180531001900038/?did=1947m

 

- 2018.04.18 안태근 전 검사장 영장 기각 - 후배 서지현 검사를 성추행하고 인사 불이익을 준 혐의

 http://www.sedaily.com/NewsView/1RYAZVU1FF


- 2018.03.30 전직 검사 진모(41)씨 영장 1차 기각 - 검사 시절 후배검사 등을 강제추행한 혐의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8/03/30/0200000000AKR20180330195451004.HTML?input=1179m


- 2018.03.07 김관진 전 안보실장 영장 기각 -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한 국방부의 수사를 축소하도록 지시한 혐의

 http://www.ytn.co.kr/_ln/0103_201803070023519157   

 

 

 

 

# 이언학(영장 전담 판사) (★★) 


- 2018.07.05 이채필 전 고용노동부 장관 영장 기각 - 이명박 정부 국가정보원(국정원)의 ‘양대노총 파괴공작’에 연루

 http://imnews.imbc.com/replay/2018/nwtoday/article/4681339_22669.html

 

- 2018.04.12 전직 검사 진모(41)씨 영장 2차 기각 - 현직 시절 후배검사 등을 강제추행한 혐의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8/04/12/0200000000AKR20180412188300004.HTML?input=1179m

 

 

 


 

# 박범석(영장 전담 판사) (★★★) 


- 2018.06.11 박상범 전 삼성전자서비스 사장 영장 기각 - 삼성전자서비스 지회의 노조와해 공작인 이른바 '그린화' 작업을 지시한 혐의

 http://news1.kr/articles/?3342346

 

- 2018.06.04 이명희 한진회장 부인 영장 기각 - 공사장 근로자와 운전기사 등에게 수시로 폭언하고 손찌검한 혐의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8/06/04/0200000000AKR20180604171351004.HTML?input=1179m

 

- 2018.05.03 삼성전자서비스 임원과 전·현직 협력사 대표(지역센터장) 등 3명 영장 기각 - 노조와해 공작을 지시·이행한 의혹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8/05/02/0200000000AKR20180502183700004.HTML?input=1179m





문재인 정권의 독주를 적절하게 견제해주시는 우리 영장 판사님들 화이팅!!!

 

 

[출처]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2324588?po=2&od=T31&sk=&sv=&category=&groupCd=&articlePeriod=default&pt=0

 

반응형
Posted by Silk Rode
, |
728x90

[국정농단 이후 정말 좋은 판사 리스트 v1.7]


# 성보기판사

배우 문성근 김여진씨의 합성사진 유포해 명예 훼손 혐의 전 국정원 심리전단 팀장 유모씨(57)가 1심 무죄(2017.12.14)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32&aid=0002838207

 

 

 


# 강부영 판사

정유라 영장 1차 기각(2017.06)

박영수 특검 물병 투척 김모씨 영장 기각(2017.08.14)

KAI 박모 임원 분식회계 증거 삭제지시 영장 기각(2017.09.13)  

KAI 현직 경영지원본부장 이모(57)씨 취업 청탁을 받고 채용비리를 저지른 혐의 영장 기각(2017.09.20)

국정원 정치 공작혐의 추명호 전 국정원국장 영장 기각(2017.10.20)

방송장악 MBC 김재철 전사장 영장 기각(2017.11.10)

전병헌 의원 뇌물수수의혹 영장 1차 기각(2017.11.24)

군 댓글 공작에 관여한 의혹을 받는 MB 정권 안보실세 김태효(50) 전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 영장 기각(2017.12.13)

 

 


 

# 권순호 판사

우병우 영장 2차 기각(2017.04)

이영선 영장 기각(2017.04)

고영태 영장 발부(2017.04)

정유라 영장 2차 기각(2017.06)

이모 KAI 경영지원본부장 영장 기각(2017.09.08)

이병호 전 국정원장 영장 기각(2017.11.17)

우병우 처가 삼남개발 압수수색영장 기각(2017.11.19)

전병헌 의원 뇌물수수의혹 영장 2차 기각(2017.12.13)

 

 


 

# 조의연 판사

이재용 영장 1차 기각(2017.01)

돈봉투 만찬 이영렬(59·사법연수원 18기) 전 서울중앙지검장 1심 무죄(2017.12.08)

 

 


 

# 김세윤판사

장시호, 삼성그룹을 압박해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후원금을 내게 한 혐의 구형량보다 1년 많은 2년 6개월 1심선고(2017.12.06)

김종, 삼성그룹을 압박해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후원금을 내게 한 혐의 구형량보다 적은 3년 1심선고(2017.12.06)

 

 


 

# 오민석 판사

우병우 영장 1차 기각(2017.02)

윤모 전 KAI 생산본부장 영장 기각(2017.08.04)

댓글 공작 양지회 임원 영장 기각(2017.09)

어버이연합 추선희 영장 기각(2017.10.20)

최윤수(우병우친구) 전국정원 2차장 영장 기각(2017.12.02)

 

 


 

# 신광렬 판사

김관진(68) 구속 재심사 후 석방-구속적부심 청구를 인용(2017.11.22)

임관빈 전 정책실장 구속 재심사 후 석방-구속적부심 청구를 인용(2017.11.24)

한국e스포츠협회 사무총장 조모씨(협회 자금을 유용한 혐의로 구속) 구속적부심 청구를 인용(2017.12.01)

 

 


 

# 김진동 판사

넥슨 진경준 검사 뇌물 무죄(2016.12)

이재용 5년 1차 판결(2017.08)

 

 


 

# 황병헌 판사

조윤선 1심 무죄(2017.07)

 

 


 

# 조영철 판사

이임순 공소 기각(2017.09)

 

 


 

# 김대웅 판사

김진태 선거법위반 2심 무죄(2017.09.27) : 이 건은 쿨한 공판검사가 무성의 했고 구형도 포기, 논란이 되고 있네요. 공판검사 신고 받아요

 

 


 

# 김국현 판사

나향욱 민중은개돼지 발언, 파면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2017.09.29)

 

 


 

# 함종식 판사

삼성물산 합병 무효소송 기각(2017.10.19)

 

 


 

# 윤준 판사

이영선 전행정관 1심 1년 유죄 깨고 2심에서 무죄(2017.11.30)

 


 


------------------------------------------------------------------------

 


 

# 성보기판사

배우 문성근 김여진씨의 합성사진 유포해 명예 훼손 혐의 전 국정원 심리전단 팀장 유모씨(57)가 1심 무죄(2017.12.14) ★

서울중앙지법 형사3단독 성보기 부장판사는 14일 국정원법 위반과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유씨에 대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다. 검찰이 ‘적폐청산’ 수사를 시작한 뒤

기소한 국정원 직원들 중 첫 1심 선고다.

성 부장판사는 “피해자들이 정신적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유씨가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성 부장판사는 유씨가 만든 합성사진의 수준이 조악해

실제로 일반인들이 사진을 봤을 때 문씨와 김씨가 부적절한 관계에

있다고 믿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출처]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1542849

반응형
Posted by Silk Rode
, |
728x90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 시즌7 한국편 중 전주 청국장 비빔밥 편에서,

잠깐 전주의 어느 전통우산 만드는 곳을 보여주는 장면이 나왔다.

그 전통우산을 보며 뭔가 이국적인 느낌이 들면서 우리나라의 전통우산이 아닌,

중국이나 일본의 것이 아닐까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포털에서 "전주 전통우산"이란 이름으로 검색을 해 봤더니, 그 우산들은 우리의 전통우산이 맞는것 같다.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우아동3가 장재마을 일원

 

전주 우산장 윤규상

 

옛부터 진주와 전주는 한지우산 제작의 중심지였다다고 한다. 

특히 전주는 좋은 한지가 생산되는 곳이자 가까운 전남 담양에서 살의 재료인 대나무를 쉽게 구할 수 있어 명품 지우산이 생산됐단다.

 

 

그랬던 것이,

 

[기사 중 일부]

http://www.chkorea.news/news/articleView.html?idxno=6400

 

70년대에 값싼 비닐우산이 나오면서 지우산은 점차 설 자리가 없었다. 80년대에는 천우산이, 90년대부터는 중국 수입우산이 들어오면서 장인들은 떠나고 지우산 공장은 문을 닫았다. 전통을 어떻게라도 살려내려고 버텼지만 대나무 자재를 공급 받을 수 없어서 공장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80년대부터 90년대 중반까지 뜨개바늘이나 낚시찌를 대나무로 제작하는 공장을 운영하면서 버텼지만 중국산이 들어오면서 이마저도 채산성이 떨어졌다.

윤규상 명인이 지우산을 다시 만들게 된 시기는 2005년도. 우연히 한지 명인 유배근 씨를 만나 전통공예의 맥을 이어보기로 했다. 우산 꼭지를 만드는 칼과 살대가 끼워질 홈대를 파는 홈칼, 살대 깎는 칼 등을 새로 제작해야 했다. 3년에 걸쳐 옛날 방식의 제작 도구들을 복원했다.

 

지우산 도구 제작 방법 복원하다

살들이 갈려나가는 꼭지(상통, 중통)는 때죽나무나 물푸레나무 등 단단한 나무를 쓴다. 상통 꼭지에서 살이 갈라져나가는 홈을 파고 여기에 담양산 맹죽이나 손죽을 사용한 살대를 깎아 넣는다. 살대와 같은 수의 받침살 또는 펴짐살이 모이는 중통도 그 간격이 일정해야 한다. 36개에서 72개의 살대가 펴진다. 지름 2cm 이상의 손대로는 곧은 청죽을 사용한다. 손대나 손대의 손잡이에 장식을 넣는다.

골산(骨傘)이 완성되면 실로 살들을 묶어낸다. 마지막으로 전주산 한지를 삼합으로 배접해 사용하고 그 위에 들기름을 먹인다. 기름 먹인 한지 덕분에 우산은 비에 젖어들지 않는다. 댓살이 촘촘하게 버텨 바람에 뒤집히지 않는다.

양산이나 비우산 용도로 사용되는 지우산은 다채롭게 물들인 한지의 색감이 아름답고 은은한 빛에 비춰드는 그 명암이 그윽하다. 그리고 비올 때 쓰면 기름을 먹인 한지라 비가 튕겨나가지 않고 살대와 한지 위를 스스륵 미끄럼을 타고 흘러내린다. 소리의 멋스러움이 있다. 여기에 비 오는 날의 추억이 깃들면서 감성에 호소해오는 정감이 있다.

 

뒤돌아보니 지우산을 복원하려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다. 복원했다고 해도 수요처가 없어 수익이 없었다. 그러나 장인은 외롭지 않았다. 2008년 제33회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2009 전주 전통공예 전국대전, 2010년 전주 한지공예 대전, 29회 전국 대나무 공예대전, 일본 가나자와시 교류 전시회, 35회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등에 도전해 상을 받거나 전시를 마쳤다. 2011년에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45호 우산장으로 지정됐다.

 

전통 이어 현대 패션 상품으로 개발

 

종이우산을 일본의 문화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어 지우산의 전통성을 알리는 일에도 전념하고 있다. 종이우산을 현대화하고 작품성을 강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천우산의 기능성과 편리성을 대체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조명용품, 디자인용품, 장식용품, 비가림과 해가림 휴식용품 등으로 변신되는 지우산의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있다.

2015년에 ‘예올이 뽑은 올해의 장인상’을 받으면서 전통 차일산과 지우산을 복원해 전시한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2017년 8월에 미디어 아티스트와 함께 지우산을 활용할 콜라보레이션 전시회를 갖은 것도 의미 있었다.

전통을 이으면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아이디어와 디자인 개발이 절실하다. 아들 성호 씨는 반도체 회사를 다니다가 아버지의 일을 돕겠다고 직장을 그만두었다. “아버지가 복원한 전통의 지우산이 현대적으로 실용성과 미적 가치를 갖출 수 있도록 장식과 색감, 패션 측면에서도 새롭게 도전하는 작업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오방색의 한지에 햇빛이 비춰들면 꽃비가 내리는 것 같다. 비꽃처럼 아름다운 색이다. 그 전통의 미감을 만들어내는 지우산의 장인과 그 아들. 아름다움은 그렇게 대물림되고 있었다.

 

 

일본 드라마에서 전주의 전통우산을 보고 저거 중국이나 일본꺼 아니야 생각했던 스스로가 조금 부끄러워졌다랄까...

 

인터넷 판매하는 곳이 있어 들어가 봤더니,

 

 

https://swindow.naver.com/itemdetail/2248748787?NaPm=ct%3Ddummy%7Cci%3Dshoppingwindow%7Ctr%3Dswl%7Chk%3Ddummy%7Ctrx%3Di%3A2248748787&inflow=aal

 

장인이 전통 수작업으로 만들어서인지 예상보다는 가격이 좀 있지만,

괜찮은 외국인이나 가까운 지인에게 선물할때 괜찮을것 같아 키핑해둔다.

 

 

 

 

 

반응형
Posted by Silk Rode
, |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